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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젠더 프리즘] 싸우는 여자들을 불러보다 / 이정연

등록 2021-02-28 17:55수정 2021-05-16 18:30

이정연|젠더데스크 겸 젠더팀장

3·1절에 떠올리게 되는 얼굴, 유관순 열사다. 항일운동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그러나 역사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유관순 열사를 제외한 여성 독립운동가는 어디에 있는가.

국가보훈처가 25일 102주년 3·1절을 맞아 독립유공 포상자를 추서하는데, 올해는 275명을 선정했다. 이 가운데 여성은 33명. 추서된 독립운동가를 포함하면 정부 수립 뒤 선정한 독립유공 포상자는 1만6685명이다. 이 가운데 여성은 3.1%, 526명이다. 항일운동에 나섰던 남성과 여성 독립운동가의 비율이 96.9% 대 3.1%였을까? 최근 활발해진 발굴 작업을 통해 드러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행적에 비춰보자면 3.1%는 지나치게 적다.

수많은 과거 인물 가운데 역사적인 인물을 꼽고, 그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탐구해 전달하는 데도 이 사회는 ‘젠더 편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남성 중심의 사회 속 ‘역사성’을 부여하면서 역시 성별 편향을 감지할 수 있다. 독립운동가 포상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교육부가 2018년 집계한 중·고등학교 검정 역사교과서 속 독립운동가와 근현대사 인물을 보면, 전체 등장인물 208명 중 여성은 16명이다. 7.7%다.

이렇듯 여성이 역사적인 인물로 기록되기까지가 하나의 싸움이다. 역사의 현장에 여성이 존재했던 명백한 사실을 끝없이 발굴하고 증명해야 하는 싸움을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이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시 함께 싸웠던 동지들이 다 인정을 받지는 못해서 그게 마음이 쓰여. 해녀로서 독립을 바라며 일제와 싸운 것은 똑같은데 왜 거기에 차등을 두나?… 우리가 한 일은 자랑스럽지만 세상이 너무 박하고 빨리 잊는 것 같아서.” 책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2021년, 한겨레출판)에 등장하는 여성 독립운동가 김옥련 편의 한 구절이다. 김옥련은 제주에서 해녀를 착취하는 기관에 맞서 싸웠던 이다. 1932년 1월12일 제주 구좌 세화장에는 700여명의 해녀가 모여들었다. 이 책에는 직업이나 독립운동의 행적이 달랐던 여성 독립운동가 14명의 삶이 담겨 있다. 기생이었다가 독립투사의 삶을 살아간 정칠성, 일제의 머리 위에 폭탄을 떨어뜨리겠다는 꿈을 품고 비행사가 된 권기옥,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과격한 간호사 박자혜… 책엔 14명의 강렬한 초상화가 함께 담겨 있다. 그림을 그린 윤석남 화가, 글을 쓴 김이경 작가. 여성이 여성을 역사에 남긴다.

102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성들은 싸운다.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은 사라졌지만, 가부장제를 비롯한 여성 억압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폭탄을 들고 뛰어들거나 억압을 피해 몸을 숨겨 망명을 해야만 하는 싸움은 아니지만, 끝이 없어 더욱 지난한 싸움이다. 일상 깊숙이 들어와 좀처럼 뿌리 뽑기 어려운 디지털 성범죄와 싸우고, 문제 제기나 공론화를 하면 가차 없는 2차 피해까지 감수해야 하는 직장 내 성폭력과 싸운다. 여성 폭력을 없애고, 남성 중심 사회에 균열을 내고자 하는 ‘싸우는 여자’들이 있다.

이제 여성은 가만히 앉아 역사가 되길 기다리지 않는다.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을 부르고 또 이어 부른다. 그리고 기억한다. 호명과 기억은 연대의 다른 말이다. 싸우는 여자들을 부른다. 서지현, 김지은, 고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의 피해자와 그들 곁에 있는 뭇 여성들 그리고 수많은 여성단체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이어서, 그 싸움의 끝을 떠올리지 않기로 한다. 다만, 그 싸움의 장면을 하나하나 역사의 페이지에 새기며 잊지 않기로 한다. 금세 사라져 버릴 이름이어선 안 된다. 서로를 기억하자. 3·1절 일주일 뒤인 3월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성차별적인 사회와 맞서 싸우는 여자들의 날. 이날엔 이제야 우리 앞에 그 존재를 드러낸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소리 내 천천히 읽어야겠다.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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