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은주·임형남
가온건축 공동대표
삼월이다. 올해도 입춘 추위는 여전했고 입춘방을 써서 대문에 붙이며 날씨가 추워서 당황하는 것은 연례행사와 같았다. 입춘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일부러 한해의 첫 절기로 집어넣었다는데, 따스한 배려는 고마우나 매년 속는 기분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춘삼월 호시절이라 하면 음력으로 3월, 양력으로는 4월에서 5월 정도이다. 양력으로 2월 초인 입춘은 사실 음력으로는 섣달이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도 정월이니, 이맘때 추운 날씨가 당연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언제나 급해서, 설 지나면 바로 봄이길 바라고 삼월이면 그냥 봄이면 좋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지난 주말 동네 산책길을 걸을 때, 날은 여전히 쌀쌀했지만 발에 닿는 땅의 감촉이 한결 말랑했다. 그래도 이제 땅 밑에서 봄이 밀고 올라오는 모양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비쩍 마른 나무 끄트머리에 달린 노란 망울을 보았다. 산수유가 고개를 내민 것이다. 내가 정한 봄의 시작은 산수유가 피면서부터이니, 날씨가 어쨌든 이제 나의 봄이 시작된 것이다.
시인 김영랑은 모란이 필 때까지는 ‘나의 봄’이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겸손한 모양과 색의 산수유가 피기 시작하면 ‘나의 봄’을 열기 시작한다. “찬란한 슬픔의 봄”이 아니라 ‘나른한 희망의 봄’이다. 물론 봄이라고 해서 특별히 뭐가 달라질 것도 아니고 바로 겨울옷을 전부 옷장 깊숙이 넣을 것도 아니겠지만, 봄이라는 이름을 입에 내는 순간 세상은 연한 노란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나는 봄이 좋다. 봄의 설렘이 좋고 봄의 아지랑이, 봄의 졸음… 봄이 가져다주는 모든 것이 좋다. 그건 아마 희망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산수유가 피면 이제 곧 매화가 벌을 불러 모으고 화려한 향을 뿜으며 피기 시작할 것이다.
“올봄에는 경남 산청 산천재 마당에 있는 ‘남명매’를 보러 가야지.” 해마다 이 소원을 입으로 내지만 한번도 이룬 적은 없다. 남명매는 1561년에 남명 조식 선생이 손수 심고 벗으로 삼았던 매화나무이다. 남명매는 남다르게 꼿꼿했던 주인의 지조를 상징하며 오랜 세월을 견디며 집과 함께 서 있다. 겨울의 찬바람을 밀어내는 매화의 향기와 그 사이로 지나다니는 바쁜 벌들과 봄기운이 감도는 햇살을 머릿속으로 그린다.
그리고 봄을 맞는 의식처럼 장영수 시인의 ‘봄’이라는 시를 꺼내어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봄의 맛을 음미한다.
“내가 또 벙어리 인형처럼/ 어느 길가에 버려진다고 하여도 나의/ 다친 흉터와 나의 공부와 나의 일에/ 닦이며 얻어내는 힘만큼, 나의 세상이/ 봄인 것이며 사람들도 봄인 것이며 나의/ 마음도 봄인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