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은주·임형남 ㅣ 가온건축 공동대표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배운 맹자님 말씀을 시험 준비하며 열심히 외운 적이 있다. ‘사단’(四端)이라고 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측은지심), 부끄러워하는 마음(수오지심), 사양하는 마음(사양지심),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시비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그때는 그것이 너무나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사람이면 당연히 장착하고 나오는 기본 옵션인데 뭘 저렇게 강조할까 하고.
그런데 지나고 보니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별것도 아닐 듯했던 그 ‘네가지 마음’을 가지고 지키는 것이다. 요즘 뉴스를 통해 접하는 다양한 사건들은 그 ‘기본 옵션’이 없어진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네가지 덕목은 사람 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주변 자연과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문득 예전에 봤던 전통 매사냥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생각난다. 스승이 제자에게 매를 조련하여 짐승을 사냥하게 만드는 전통적인 사냥법을 전수하는 과정 속에서, 매와 인간이 공존하는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었다. 스승은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가르침을 주는데, 그건 현란한 기법이나 고도의 수법이 아니라 매사냥의 정신이었다.
그 정신은 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었다. 매사냥이라는 것이 창공을 날아다니며 자유롭게 살아야 하는 매의 자유를 빼앗고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일이기에 그렇다. 기대했던 사냥의 비기는 아니었지만, 그 이야기가 계속 귀에서 쟁쟁했다.
‘미안해하는 마음’, 사실 그것은 건축가에게도 가장 필요한 정신이다. 건축이란 궁극적으로 땅에 업을 짓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늘과 맞닿아 자유롭고 가볍게 존재하던 땅 위에 사람들이 얹혀살기 시작하며 점점 더 무거운 구조물을 올리고 있고, 그 일에 앞장서는 사람이 건축가이다.
건축가뿐 아니라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땅에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할 줄도 알아야 한다. 예전 우리의 조상들이 땅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마음이 그랬다. 땅은, 아니 자연은 인간보다 훨씬 강한 존재이고 우리를 받아들여주는 고마운 존재이므로, 인간은 알아서 삼가며 땅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건축이란 자연을 극복하는 엄청난 기술이 아니라 자연과 공존하는 지혜일 것이다.
요즘 땅으로 시끄럽다. 집값을 잡겠다고 집을 더 지어야겠다고 하더니, 개발할 땅을 찾고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사방 파열음이 요란하게 들린다. 특히 그 일을 공정하게 진행하기 위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시비를 가려야 할 사람들이 앞장서서 땅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기 위해 벌인 일 때문이다. 타고난 부끄러움이 없어졌다면 배우기라도 해야 한다.
땅에 미안하고, 잠시나마 뻔한 말씀을 하셨다고 폄하했던 맹자님께도 죄송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