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 제13조는 “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소급입법에 의하여…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소급입법 금지’ 원칙은 법에 대한 신뢰와 법적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보편적인 법원칙이다. 그런데 이를 헌법에 명기한 데는 역사적 경험이 작용했다. 4·19 혁명과 5·16 군사쿠데타를 거치면서 부정축재 처리법 등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박탈이 이뤄졌다. “(이 조항은) 정치적·사회적 보복이 반복되어온 헌정사를 바로잡기 위하여 도입된 것으로서, 예외를 두지 않는 절대적 금지명령”(이강국·조대현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예외’를 인정했다. 12·12 군사반란과 5·18 내란 관련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1995년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으로 이들의 공소시효를 사실상 연장했는데, 이것이 소급입법에 해당한다며 당사자들이 위헌소송이 제기했다. 헌재 재판관들 사이에 다양하게 의견이 나뉘었지만 결국 합헌 결정이 났다.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특단의 사정이 있는 경우, 즉 기존의 법을 변경하여야 할 공익적 필요는 심히 중대한 반면에 그 법적 지위에 대한 개인의 신뢰를 보호하여야 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소급입법이) 허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학살한 행위는 헌법질서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켰으며 많은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침해한 것인 만큼 이를 처벌하는 것은 월등히 중대한 공익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우리 헌정사에 공소시효에 관한 소급입법을 단 한번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면 바로 이러한 경우에 허용하여야 한다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형사처벌처럼 신체의 자유 등 중요한 기본권을 제약하는 소급입법은 매우 엄격한 기준으로 위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 다음 ‘예외’는 재산권과 관련된 것이었다. 2005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 ‘친일 재산’ 환수가 이뤄지자 당사자들이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헌재는 이번에도 치열한 의견 대립을 보였지만 앞선 사례보다는 좀더 수월하게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다수 의견은 “친일재산의 취득 경위에 내포된 민족배반적 성격,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선언한 헌법 전문 등에 비추어 친일반민족행위자 측으로서는 친일재산의 소급적 박탈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고, 친일재산 환수 문제는 그 시대적 배경에 비추어 역사적으로 매우 이례적인 공동체적 과업이므로 이러한 소급입법의 합헌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계기로 소급입법이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는 충분히 불식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헌재는 소급입법이 허용되는 예외적인 경우에 대한 판례를 확립했는데, ①일반적으로 국민이 소급입법을 예상할 수 있었거나 법적 상태가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웠거나 하여 보호할 만한 신뢰의 이익이 적은 경우 ②소급입법에 의한 당사자의 손실이 없거나 아주 경미한 경우 ③신뢰보호의 요청에 우선하는 심히 중대한 공익상의 사유가 소급입법을 정당화하는 경우 등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직자가 지위를 활용해 얻은 부동산 투기 이익을 몰수하는 게 현행법으로 어려우면 소급입법을 통해서라도 관철하겠다는 태도다. 이것이 헌재가 규정한 소급입법 금지의 예외 사유에 해당하는지는 국민 각자가 충분히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박용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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