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은주·임형남 ㅣ 가온건축 공동대표
건축 실무를 시작한 지 30년이 넘었고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건축설계사무소의 주된 업무는 건축설계와 시공감리이지만, 그 과정에서 관청에서 인허가 업무를 하며 많은 공무원을 만난다. 우리나라 건축법은 일제강점기에 만든 법을 토대로 사고가 터지면 그때그때 새로운 규제를 덮어씌운 법이라 체계가 무척 이상하다. 마치 땜질을 많이 한 포장도로같이 덜컹거리고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적 권리마저 침해하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성근 그물처럼 빠져나갈 구멍도 많아 ‘담당자의 판단과 재량’이 그 구멍을 메우곤 한다. 그만큼 공무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실무를 시작하던 무렵이 노태우 정권, 즉 6공화국 후반부였다. 그때의 관공서 분위기는 상당히 권위적이며 고압적이었다. 이후 무척 오랜만에 민간인이 대통령이 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놀라울 정도로 친절하고 긍정적으로 변한 공무원의 태도에 기쁘면서도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반년도 되기 전에 그들은 예전으로 돌아갔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자 친절한데다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문제의 해결도 같이 모색하는 공무원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 그때는 ‘공무원 사회도 이렇게 변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 기조는 5년 내내 유지되었다. 이후에도 정권에 따라 그들의 태도는 계속 바뀌었다. 물론 일반화하기는 곤란한 개인적 경험이긴 하지만 말이다.
문득 예전에 본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이라는 박완서 선생의 소설이 생각난다. 6·25 전쟁 때 미군이 어느 마을에 주둔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미군은 밤마다 “색시 해브 예스?”를 외치며 마을을 뒤지고 다닌다. 순박한 산골에 기지촌이 있을 리 만무해 분위기가 흉흉해지고 여자들은 불안에 떨게 된다. 그러자 마을의 가장 웃어른인 할머니가 자청해서 화장을 하고 화사한 옷으로 치장하고 미군의 지프차에 실려 갔다가, 별다른 일 없이 먹을 것을 가득 담은 상자를 안고 돌아온다. 할머니는 불안과 궁금함이 가득한 여자들 앞에서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만약 일본군에게 끌려갔으면 단박에 죽었을 것이고 소련군에게 끌려갔으면 욕을 봤을 거라 비교하며. 비록 소설이긴 하지만 ‘차악’에 감사해야 하는 상황은, 외세에 빈번히 침탈당하던 역사 속에서 알게 모르게 우리 일상에 깊은 그늘을 만들어왔다.
사실 정권이 바뀌고 대통령이 바뀌어도 행정에는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 그때그때 바뀌는 게 공무원의 본질이 아님은 당연하다. 변화의 시기를 앞두고 그들이 또다시 흔들림 없이 눈치 보지 않고, 업무의 크고 작음이나 중요도와 상관없이 소신과 책임감을 가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오래전 이미 보여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