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후보가 당선되면 뉴타운 광풍이 다시 부는 걸까. 모두가 앞다퉈 올라탔다 허겁지겁 내렸던 이른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다시 굴러가는 걸까. 오 후보는 노골적으로 그 전차에 탑승하라고 부추기고, 박 후보는 머뭇머뭇 그 전차를 덩달아 굴릴 듯한 신호를 보낸다. 엘에이치 사태와 선거가 맞물리면서 서울이 ‘묻지 마 개발 판’으로 변할 조짐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의 펼침막이 지난 30일 밤 서울 양천구 지하철 5호선 목동역 근처 네거리에 걸려 있다. 백기철 기자 kcbaek@hani.co.kr
엊그제 귀가하는데 아파트 단지 길목에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두 후보의 펼침막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는 “재난위로금 1인 10만원 디지털 화폐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는 “재개발 조속 추진 및 주차장 확충”을 적었다. ‘10만원’과 ‘재개발’은 대조적이다. 재개발을 원하는 이들은 오 후보, 보편 지원에 관심 있는 이들은 박 후보를 찍겠다 싶었다.
그런데 오 후보 공약을 보니 시간이 15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오 후보가 처음 시장이 된 2006년 무렵의 뉴타운을 떠올리게 한다. “취임 1주일 안에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겠다”는 오 후보가 당선되면 뉴타운 광풍이 다시 부는 걸까. 모두가 앞다퉈 올라탔다 허겁지겁 내렸던 이른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다시 굴러가는 걸까.
오 후보는 노골적으로 그 전차에 탑승하라고 부추기고, 박 후보는 머뭇머뭇 그 전차를 덩달아 굴릴 듯한 신호를 보낸다. 오 후보는 민간 주도 재개발·재건축은 물론 아파트 층수 제한 해제 등을 내놓았고, 박 후보는 부분적으로 민간 주도 재개발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엘에이치(LH) 사태와 선거가 맞물리면서 서울이 ‘묻지 마 개발 판’으로 변할 조짐이다.
재개발, 뉴타운이 악은 아니다. 지금 시점에선 집값을 잡기 위한 공급 대책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 와중에 거꾸로 집값을 부풀려 가진 이들의 욕망을 채우는 식은 곤란하다. 공공성, 주거 약자를 배려한 연대성을 확고히 하는 선에서 공급과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사람들은 다시 개발시대를 원하는지 모른다. 2011년 박원순이 서울시장이 되어 도시재생으로 전환했으니 10년이 흘렀다. 박원순 시정에 대한 정책적, 반성적 평가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치러지는 이번 선거가 어떻게 귀결될지 자못 궁금하다.
이번 선거의 또다른 특징은 퇴행적이라는 점이다. 오 후보 등장 자체가 ‘올드 보이’의 귀환이다. 오 후보가 당내 경선과 야권 단일화에서 중도 이미지로 대역전했지만 실제 공약이나 언행은 ‘과거로의 회귀’에 방점이 찍혀 있다.
부동산 관련 공약이 대표적이지만 복지도 의문이다. 오 후보가 보편 복지의 출발점인 무상급식에 반대해 사퇴했던 때의 소신이 바뀌었다는 징표가 별로 없다. 오 후보는 코로나 재난지원금 선별지급을 강조하는데, 여전히 보편 복지에 회의적인 것 같다.
오 후보의 내곡동 땅 의혹은 그가 중도냐, 보수냐, 극우냐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가장 기초적인 후보의 도덕성, 자질의 문제다. 거짓말 여부가 막판 쟁점인데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박영선 후보가 중도적, 미래지향적 이미지로 유권자들에게 다가가는 것 같지도 않다. 박 후보는 현 정권 실정에 대한 추궁을 온몸으로 떠안고 있다. 선거에선 정책·인물보다 심판이 더 강력하다. 박 후보가 정책적, 정무적으로 젊은이들 마음을 흔들지도 못하는 것 같다. 선거대책위에 2차 가해 논란을 일으킨 의원 3명을 앉힌 것 자체가 난센스였다.
별로 변하지 않은 오 후보가 중도 이미지를 가져가고, 박 후보가 상대적으로 20대들에게 고전하는 이유는 집권세력의 실정으로 이른바 ‘중원’이 비었기 때문이다. 추-윤 갈등과 부동산 폭등 와중에 민심이 이반하면서 중원이 텅 비었고, 그 틈새를 국민의힘이 파고들었다.
게다가 국민의힘은 안철수의 야권 단일화 자충수로 제3세력까지 끌어들이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여기에 윤석열까지 어떤 형태로든 국민의힘을 근거로 할 것이 확실시되면서 사실상 보수야당+제3세력의 강력한 연대가 성립됐다.
오세훈류의 ‘수상한 중도’ 또는 ‘과거로의 회귀’가 시대정신의 변화까지를 예고하는지도 관심거리다. 김대중·노무현 시대를 지나 약육강식의 이명박 시대로 넘어갔던 그런 분기점이 재연되느냐 여부다. 아마도 내년 대선은 이를 둘러싼 건곤일척의 싸움이 될 것이다. 정권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이 크지만 그렇다고 촛불 이후 시대정신으로 자리잡은 공정과 정의, 연대와 통합이 시효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
서울시장 선거는 엘에이치 사태와 야권 단일화 등 주요 변수에서 국민의힘이 승기를 잡았고, 여당은 1년 뒤 제대로 된 승부를 기약할 수 있을 정도의 유의미한 접전이라도 해내야 할 형편이다. 물론 1주일이나 남은 선거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형세의 변화를 애써 부정할 필요도 없고, 한탄만 할 일도 아니다.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로 주변부터 냉철히 살펴야 한다.
백기철ㅣ편집인 kcbae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