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오염수 배출의 위험한 공조 / 리팅팅

등록 2021-04-18 18:21수정 2021-04-19 02:05

리팅팅 ㅣ 중국 베이징대 교수

지난 13일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해양 방출하기로 공식 결정했다. 미국 국무부는 즉각 성명을 내어, 일본의 결정이 “투명”하며 “국제적으로 공인된 핵 안전 기준에 부합한다”고 지지를 표했다. 국제사회는 물론 일본 내부에서도 광범위한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과 대조를 이뤘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국가다.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출은 해양환경과 식품안전, 인류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문제인 만큼 신중하고 책임 있게, 객관적 입장을 유지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미 국무부가 내놓은 성명은 적어도 두가지 점에서 적절치 못한 평가다.

먼저 일본의 결정이 “투명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핵 오염수 해양 방출은 주변국은 물론 세계 각국의 안전과 직결돼 있다. 하지만 일본은 사전에 이를 주변 이익 당사국에 통보하지 않았다. 방출 결정 이후에도 핵 오염수와 관련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중국, 한국, 러시아, 북한 등이 강력 항의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이뿐이 아니다. 일본은 5가지 오염수 배출 방식을 비교했다고 주장하지만, 기업의 비용을 고려해 기존 오염수 보관 용량을 늘리는 방안은 애초부터 제외했다. 이에 대해선 일본 내부에서조차 합리성과 정당성에 대한 충분한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일본이 오염수 방출 결정을 공개하고, 이를 미국과 사전에 소통했다는 이유만으로 ‘투명한 결정’이라고 말할 순 없다.

이른바 “국제적으로 공인된 핵 안전 기준에 부합한다”는 주장도 신중치 못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발생한 가장 심각한 사고 중 하나다. 정상적인 원전 가동을 통해 생성된 오염수를 방출하는 기준을 단순 적용하기엔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관심을 끌고 있는 방사성 삼중수소 이외에도 일부 학자들은 해양생물과 해저침전물에 쉽게 녹아들 수 있는 루테늄-106, 코발트-60, 스트론튬-90 등 동위원소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반감기가 5700년에 이르는 탄소-14의 대규모 방출로 인한 영향을 예측하기 어렵고, 탄소-14 측정의 정확도를 왜곡하는 등 또 다른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이미 많은 지적이 나온 것처럼 미국이 일본에 편향된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정치·전략적 고려에 따른 것이며, 일본의 외교적 준비 작업과도 연관돼 있다. 이에 더해 일본의 프레임 설정도 주목할 만하다. 일본은 핵 오염수 해양 방출이란 세계 공통의 환경안전 문제를 경제적 비용과 오염수 처리 기술 문제로 재규정했다. 나아가 소수 국가와 전문가 집단이 발언권을 장악하고 있는 전문성과 기술성 논쟁으로 전환시켜, 대다수 직접 이해당사자들을 배제한 채 소수의 지지를 얻어 자신의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방식은 일본 외교에서 낯익은 풍경이다. 가장 전형적인 사례는2차대전 이후 전후 처리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은 1차대전 처리 사례를 참고해, 식민지 관련 문제를 평등한 교전 당사국 간 영토분할 방식으로 처리하자고 미국에 제안했다. 이를 통해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청산 문제를 전후 처리라는 통일된 틀 안으로 편입시키는 국제법 근거를 마련했다. 이 같은 방식은 이후 미국의 지역 전략과 맞아떨어져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뼈대가 됐으며, 나아가 일본과 주변국들의 개별적 정상화 협상의 원칙과 방향을 규정하게 됐다.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식민지배 청산 문제도 이런 프레임 아래서 주목받기 어렵게 됐고, 지금까지도 동북아시아 화해와 협력의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후쿠시마 핵 오염수 해양 배출 문제는 세계 환경안전과 인류 공통의 명운이 걸린 문제다. 한번 잘못 처리하면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어떤 국가도 자국의 이익만 따지는 데서 출발해, 프레임 설정과 발언권 우위를 바탕으로 다른 이해당사자를 우회해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은 결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거나 지지할 권리는 없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 의원 아닌 “간첩 싹 잡아들이라 한 것” 누가 믿겠나 1.

윤석열, 의원 아닌 “간첩 싹 잡아들이라 한 것” 누가 믿겠나

그 많던 북한군은 다 어디로 갔나?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2.

그 많던 북한군은 다 어디로 갔나?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사설] 속속 드러난 ‘윤석열 거짓말’, 언제까지 계속할 건가 3.

[사설] 속속 드러난 ‘윤석열 거짓말’, 언제까지 계속할 건가

대한제국 ‘전시 중립선언’에 운명을 걸다 4.

대한제국 ‘전시 중립선언’에 운명을 걸다

윤석열 파면되면 국힘 대선후보 낼 자격 없다 5.

윤석열 파면되면 국힘 대선후보 낼 자격 없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