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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소다 넣은 밀가루빵 같은 아파트값 / 정남구

등록 2021-04-27 16:53수정 2021-04-28 02:38

26일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이 발표한 월간KB주택시장동향 자료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1억원을 돌파했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의 아파트 단지모습. 연합뉴스
26일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이 발표한 월간KB주택시장동향 자료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1억원을 돌파했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의 아파트 단지모습. 연합뉴스

정남구 논설위원

쉰 해를 조금 넘게 사는 동안 내가 몇번이나 이사를 했는지 꼽아봤다. 1년 이상 머물러 산 집이 17곳이었다. 그중 ‘우리 집’은 태어나 13년 산 고향 집과 8년 전 입주해 지금 살고 있는 고양시 아파트 2곳뿐이다. 30년 넘게 남의집살이를 하는 동안 가장 감당하기 버거운 것은 갑작스러운 전셋값 폭등이었다. 그래서 ‘이사 그만하고 살 내 집이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집 사서 재산을 불려보자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렵게 분양받아 입주한 뒤 몇해 동안 별 움직임이 없던 아파트값이 지난해 꽤 큰 폭으로 뛰자 내가 이상해졌다. 부끄럽게도, 시세를 자주 살펴보게 된 것이다. 문학평론가 고 김현 선생께서 오래전 쓰신 글이 떠올랐다.

“아파트값이 움직이는 시기에는 모든 아파트 주민이 소다를 잔뜩 넣은 밀가루 빵처럼 부풀어오른다. 아파트 단지는 사람을 적당히 미치게 하는 데에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뿌리 깊은 나무>, 1978년 9월)

43년 전 글인데,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그동안 수많은 정책적 노력에도 ‘부동산 불패 신화’는 건재하다. 더 오를 거란 불안감에, 젊은이들이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다고 한다.

은행의 가계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지난 3월 739조원으로, 10년 전보다 449조원 늘었다. 이렇게 금융시장과 부동산의 연계성이 커지면서, 금리가 집값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지난해 코로나19 때문에 한국은행이 정책금리를 사상 최저로 내렸는데, 집값 급등이 서울 중심부에서 외곽으로 퍼지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집 없는 사람들은 더 불안해졌고, 비싼 집 여러채 가진 사람들은 불어나는 세금에 입이 튀어나와 있다.

‘4월 누에는 날이 따뜻하기를 바라지만 보리는 차갑기를 바라고, 길손은 맑은 하늘을, 농부는 비를, 뽕잎 따는 아낙은 구름 낀 하늘을 바란다.’ 이런 옛 시의 하늘 노릇 하기만큼이나 부동산 정치는 어렵다. 세 들어 사냐 집을 가졌냐, 어디에 어떤 집을 가졌냐에 따라 요구하는 것이 다른 까닭이다. 그래서 선거철만 되면 정책이 춤을 춘다. 불만인 사람들은 ‘기다리면 또 바뀐다’고 믿고 실제 그렇게 되는 일이 잦으니, 부동산 불패 신화는 맷집이 자꾸 세진다.

과거 우리나라의 부동산 정치는 정부가 값싸게 택지를 대규모로 확보하고 분양가를 통제하여, 청약통장 가입자들에게 적잖은 물량의 새 아파트를 싸게 공급하는 방식이 주였다. 무주택자에게 희망을 주고 집값 상승도 어느 정도 억제해, 큰손들이 부동산으로 돈을 긁어모으는 것을 눈감게 했다. 그런데 값싼 택지를 대규모로 확보하기가 점차 어렵게 되면서 한계에 봉착했다.

게다가 주택 시장 규모가 커지고 ‘부동산의 금융화’도 진척돼, 정부가 집값을 좌우할 능력을 여전히 갖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정책 목표를 ‘임대료 안정’으로 전환하고, 거기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 서민 주거 복지 확대와 집값 안정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그것은 어찌하든, 다주택자의 주택 매각을 유도하지 못하면 부동산 불패 신화는 깨뜨리지 못할 것이다.

금리가 원인이든 수급이 배경이든, 집값 상승은 사실 땅값이 오르는 것이다. 건축물은 시간이 갈수록 낡아 값어치가 떨어진다. 반면 대지 가치가 그보다 더 올라 집값이 뛴다. 땅은 주변이 개발되고, 인프라가 갖춰져 이용가치가 커지면서 값이 뛴다. 일단 사서 소유권이란 금줄을 치는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그렇게 앞세대들이 쓸 만한 땅을 ‘싹쓸이’해버렸으니, 후세대들은 ‘세대 착취’로 여긴다. 대전환을 해야 한다.

돈 있는 사람이 땅과 집을 사서 그야말로 묻어두고 지낼 수 있는 것은 보유세가 낮기 때문이다. 다주택자들이 임대사업자 시늉을 하게 하기보단 집을 팔게 해야 한다. 긴 계획을 갖고 차근차근 보유세를 올려야 한다. 고가 다주택 보유자에겐 더 크게 올려야 한다. 그걸 놔두고 손가락질만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국회가 종합부동산세를 고친 것은 지난해다. 6월부터 적용된다. 시행을 눈앞에 두고 고치자는 사람들이야말로 집값 안정의 적이다.

사실 1주택자의 보유세 부담은 그리 크지 않다. 지난해 내가 낸 아파트 재산세는 7년간 탄 2천㏄짜리 승용차의 자동차세와 비슷했다. 올해는 공시가격이 오르겠지만, 세율은 낮췄다고 한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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