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아이를 돌보는 어른에게 가장 행복한 시기는 아이가 말을 배울 때다. 아이의 말은 대부분 짧거나 비슷한 소리를 거듭한다. 맘마, 까까, 찌찌, 응가, 쉬야, 냠냠, 지지, 떼찌, 맴매. 동물 이름도 소리를 연결하여 꼬꼬닭, 야옹이, 멍멍개, 꿀꿀돼지라 한다. ‘어서 자!’ 말고, ‘코 자!’라 해야 잔다.
아이를 묘사하는 말도 따로 있다. 아이는 아장아장 걷고, 응애응애 운다. 운동 감각을 키워주려고 도리도리, 죔죔, 섬마섬마를 한다. 어른은 대(大)자로 누워 자지만 아이들은 잠투정을 하다가도 나비잠을 잔다. 먹은 것 없이 처음 싸는 배내똥은 늙어 죽을 때 한 번 더 싼다. 걸음마를 배우고 아장아장 걷게 될 무렵부터 아이의 말도 팝콘처럼 폭발한다.
낱말에서 멈추지 않는다. 어른들이 세상을 다 안다는 듯이 냉소와 무심함으로 살 때, 그들은 이 복잡미묘한 세계를 처음 겪는 낯섦과 혼란에 맞선다. 아이는 인과관계를 생각하는 마음의 습관을 타고난다. 이유나 근원을 자꾸 묻는다. 그러다가 엉뚱해진다. 추리는 대부분 틀리지만, 중요한 것은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사물과 현상을 직접 관찰한다는 점이다(말 그대로 직-관(直觀)!). 게다가 이 세계를 분리하지 않고 상호 의존적으로 연결하려는 본능적 성향을 보인다.
이 세계에 대한 관심과 열정, 그리고 끝없는 질문과 의심하는 태도를 지성이라고 한다면, 어린이야말로 지성인이다.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지만, 그래도 아이를 키우는 일은 행복하다. 세계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고 언어를 재료 삼아 삶을 건축해 나가는 한 인간의 집념을 목격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