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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홍세화 칼럼] 아프리카 출신 두 친구의 사연

등록 2021-05-13 13:51수정 2021-10-25 10:27

[홍세화 칼럼]
 북아프리카 출신 친구는 보호일시해제를 받아 외국인보호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보호일시해제’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보호를 해제해? 그게 뭐야?”라며 갸우뚱했던 게 나만의 일이 아니다. 이 글에 숱하게 나오는 ‘보호’라는 말 대신 ‘구금’을 사용하면 잘 읽힐 것이다. 그 친구는 1년 동안 구금되면서 지병이 크게 도졌다. 치료 명목으로 일시해제 조치를 받았는데 보증금 300만원을 내야 했다.

홍세화ㅣ장발장은행장·‘소박한 자유인’ 대표

아프리카 출신 두 사람과 친구가 된 것은 프랑스어 소통을 통해서였다. 나이 오십대의 북아프리카인과 이십대의 서아프리카인이다. 둘 다 프랑스의 구식민지 출신으로 프랑스어를 구사한다. 둘 중 한 사람은 아직 얼굴도 보지 못했다. 나는 그들을 친구라고 부른다.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 전화 소통을 하고 있다는 점도 있지만,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타자를 존중하고, 타자와 인격적 관계를 맺어야 ‘나’라는 존재의 유한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을 새기며 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칼럼난을 통해 소개했듯이, ‘마중’ 회원들은 외국인보호소에 갇힌 보호외국인들을 면회해왔다. 지금은 코로나19 감염병 때문에 6개월째 면회가 중지돼 접촉은 전화와 편지 등으로만 이루어진다. 우리는 보호외국인들에게 전화를 걸 수 없고 받을 수만 있다. 보호외국인들은 휴대전화를 압수당한다. 휴대전화는 오늘날 통화용으로만 사용되지 않는다. 모든 메시지와 화면의 송수신이 이뤄지고 온갖 정보가 저장된다. 하지만 보호외국인들은 공중전화만 사용할 수 있다. “왜 휴대전화를 압수해야 하나?”라는 물음에 외국인보호규칙에 그렇게 돼 있다는 말 말고 다른 답은 없다.

그 밖에도 보호외국인들은 각종 보호를 받는다. 도주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수의(죄수옷) 같은 보호복을 입는다. 보호외국인 중에는 수의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싫어 가족이나 친지의 면회를 거부하기도 한다. 외부 병원 진료나 재판 등으로 외출할 경우에는 수갑을 차야 한다. 급식, 의료, 복장, 침구, 세탁, 운동, 면회실 운영 등에서도 보호외국인들은 외국인보호규칙과 시행세칙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 아프리카 출신의 보호외국인 두 사람을 친구로 둔 사람의 편견이겠지만, 이 각별한 보호에는 ‘지디피(GDP) 인종주의’와 행정편의주의, 후진적 인권의식과 감수성이 소담히 담겨 있다.

난민 불인정 등의 사유로 장기간 갇히는 보호외국인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보호기간, 즉 형기(형벌 기간)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점에 있다. 우리가 고문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결국 무너지는 것은 고문의 고통도 견디기 힘들지만, 결정적인 것은 그 고문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점에 있다. 장기간 구금되면서 병을 키우거나 없던 병이 생기는가 하면, 건강하던 젊은이가 갑자기 사지가 마비되는 심각한 경우도 있다. 고혈압, 위장장애, 변비, 치질, 탈모 등은 흔한 증상이라 아예 주목받지도 못한다. ‘마중’ 회원들은 면회 시 대화하는 도중에 어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등 심리적 장애 증상을 보이는 보호외국인들을 여러 번 목격하였는데, 지금까지 외국인보호소를 거쳐 간 외국인들이 겪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같은 정신적 피해를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서아프리카 출신의 젊은 친구는 8개월째 보호소에 갇혀 있다. 그는 테러리스트들의 신원을 경찰에 알려주었다는 이유로 살해 위협을 받아 급히 브로커를 통해 사증을 만들어 한국에 입국했는데 나중에 브로커가 당국에 적발되면서 사증이 무효가 되었다. 그도 최근에 복통과 가슴 통증을 호소하였다.

지난 2월 서울행정법원의 남기용 판사는 출입국관리법 제63조 1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재판부는 “강제퇴거명령을 받은 외국인을 보호시설에서 무기한 보호할 수 있도록 한 이 법조항이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어긋난다고 볼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서 “행정의 편의성과 획일성만을 강조하는 것으로 신체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설명했다. 이 법조항에 대한 위헌심판 제청은 이번이 세 번째다. 2016년 서울고등법원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2018년 2월에, 합헌 4, 위헌 5(이진성·김이수·강일원·이선애·유남석 재판관) 의견으로 합헌을 유지했다. 위헌 결정에는 6명 이상 재판관의 위헌 의견이 필요한데 1명이 부족했다. 법 지식이 부족한 나에게 재판부의 위헌 제청 사유는 상식처럼 다가오는데, 워낙 권력게임으로 바쁜 탓일까, 관할 법무부는 이에 반응할 필요를 조금도 느끼지 않는 듯하다.

북아프리카 출신 친구는 보호일시해제를 받아 외국인보호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보호일시해제’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보호를 해제해? 그게 뭐야?”라며 갸우뚱했던 게 나만의 일이 아니다. 이 글에 숱하게 나오는 ‘보호’라는 말 대신 ‘구금’을 사용하면 잘 읽힐 것이다. 그 친구는 1년 동안 구금되면서 지병이 크게 도졌다. 치료 명목으로 일시해제 조치를 받았는데 보증금 300만원을 내야 했다(최대 2천만원까지 요구한다). 달마다 현신해야 하고 3개월마다 일시해제를 연장해야 한다. 취업은 안 된다.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치료받을 수 있는지의 물음에 대한 답은 없다. 지병이 나아지면 보호소로 다시 들어가야 하나? 그렇다면 병을 고치면 안 되잖아? 이 물음에도 답은 없다.

답이 없다는 점은 성소수자인 그의 난민신청이 받아들여질 것인가의 물음 앞에서 가장 엄중하다. 난민면접 때 조사관으로부터 “애인은 몇 명이나 사귀었나?” 등 이성애자에겐 던지지 않을 질문을 들어야 했던 그의 앞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 수준을 그대로 드러낸 대법원 판례가 준엄하게 버티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비난, 불명예, 수치를 피하기 위하여 스스로 자신의 성적 지향을 숨기기로 결심하는 것은 부당한 사회적 제약일 수 있으나, 그것이 난민협약에서 말하는 박해에 해당하지는 아니한다…”(대법원 2017.7.11. 선고 2016두56080 판결).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살면 된다는 한국의 판례는 캐나다 이민난민위원회 난민보호부가 2007년 2월에 내린 “숨겨진 권리는 권리가 아니다”(A hidden right is not a right)라는 결정서 내용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난민협약 제1조 A항 2호에 따르면, 난민은 “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받을 것이라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두려움으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사람으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그러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다. 유엔난민기구와 해외 판례는 일반적으로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으로 인한 난민 사유로 인정하고 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미국의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2015년 동성혼 합법화 판결 뒤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 우리에게도 ‘시대의 기후’를 고려하는 판사가 적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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