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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미얀마 시인의 ‘혁명은 심장에 있다’ / 정남구

등록 2021-05-19 16:42수정 2021-05-20 09:44

계수나무 이파리는 잘 그린 ‘하트’(♡) 모양을 하고 있다. 가을이 되면 익어가는 이파리에서는 달콤한 솜사탕 냄새도 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한 잎 따서 건네보시라. 인류는 오래전부터 마음을 표현할 때 가슴속의 심장을 가리켜왔다. 두근거리고, 터질 것 같고, 때론 찢어질 듯한 심장이야말로 마음의 상태를 가장 잘 대변한다고 생각했던 까닭일 게다.

중국 은나라 때 갑골문에 등장하는 마음 심(心) 자는 심장 모양을 본뜬 것이다. 사랑 애(愛), 뜻 정(情), 생각 사(思) 모두 심장에서 나왔다. <하트에 관한 20가지 이야기>를 쓴 매릴린 얠롬은 그리스 시인 사포가 ‘미친 심장’ 때문에 괴로워했다는 기록 등을 근거로 서양인들이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심장을 사랑과 같은 것으로 여겼다고 했다.

그러나 현대 의학은 마음이, 심장이 아니라 뇌에 있다고 한다. 심장은 마음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그저 몸에 피가 돌도록 펌프질을 할 뿐이란다. 그것이 ‘의학적 진실’이겠지만, ‘시적 진실’ 아래선 사랑은 여전히 ‘계산 없이 순수한 심장’의 몫이다. 그래서 큐피드는 지금도 심장에 화살을 겨누고, 북한의 대중가요에서도 못 잊을 사람이 ‘심장 속’에 남고, 손가락 하트가 21세기의 새 유행이 된다.

지난 2월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고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에게 군이 발포해 많은 희생자가 나오고 있다. 시인 켓 티는 이런 시를 썼다고 한다. “그들은 머리를 겨누지만, 혁명은 심장에 있다는 걸 모른다.” 혁명이 심장에 있다니, 이건 무슨 말일까? 미얀마 시민의 저항 행동은 뇌의 수지타산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에서 나왔다는 뜻일 게다. 비록 너희가 우리 목숨을 빼앗을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뜻을 꺾지는 못할 것이라고.

미얀마 시민 항쟁이 100일 넘게 이어지는 동안 군의 무력·폭력에 희생된 사람이 800명이 넘는다. 시인도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무참히도 심장이 제거된 주검으로 가족에게 돌아왔다. 이팝나무 꽃 하얗게 피어 있던 1980년 5월의 광주를 다시 보는 듯 가슴에서 붉은 피가 솟는다. 많은 이들이 피 흘려 쟁취한 민주 정체의 소중함을 심장에 새기며, 세 손가락 경례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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