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3주년을 맞아 한겨레가 시작한 디지털 후원회원제 ’한겨레 서포터즈 벗’을 소개하는 누리집(홈페이지)의 모습. 후원 방법과 리워드, 한겨레의 후원 역사 기록 등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백기철 칼럼] 백기철 ㅣ 편집인
“좋은 저널리즘이란 이상을 믿습니다.”
<한겨레>가 지난주 시작한 후원회원제 ‘서포터즈 벗’에 참여한 한 후원자가 남긴 말이다. 짧은 문장이지만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이 시대에 좋은 저널리즘이란 무엇인지, 정말 좋은 저널리즘이 가능한지, 우리가 여전히 좋은 저널리즘이란 이상을 굳게 간직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됐다.
‘벗’들이 남긴 한마디 한마디는 포털 댓글 등 거친 언사로 상처받아온 한겨레 기자들의 가슴을 적시기에 충분했다. 후원도 고마운데 따뜻한 격려와 위로까지 보내주신 ‘벗’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최소금액이라 미안합니다. 한겨레의 7가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가 주세요.”
“20년 정기구독자입니다. 후원회원 벗으로 후원할 수 있어 기쁩니다.”
“기후변화와 가족 형태 다양화, 젠더에 꾸준히 관심 두는 한겨레를 응원합니다.”
“간혹 욕할 때도 있고 이해 안 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저에겐 사회의 등불이며 희망입니다.”
“비난과 조롱에 기죽지 말고 한겨레답게 취재해주세요.”
“한겨레를 신뢰합니다.”
‘한겨레 서포터즈 벗’을 시작하는 날 아침
‘신뢰 저널리즘, 한겨레의 약속’(<한겨레> 5월17일치 8면)이란 글을 내보냈다. 실천 방안으로 7가지 약속을 제시했다.
‘기후위기 보도, 최전선에서 뛰겠습니다’ ‘불평등과 빈곤, 대안을 찾겠습니다’ ‘젠더 이슈, 절박한 마음으로 다가서겠습니다’ ‘권력과 자본 감시, 제대로 하겠습니다’ ‘반성하는 언론, 겸손한 언론이 되겠습니다’ ‘주주·독자·후원자 소통 채널을 구축하겠습니다’ ‘취재와 보도의 관행을 개선하겠습니다’가 그것이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지만 한눈팔지 않고 가겠다고 거듭 약속드린다.
‘벗’들과의 만남을 시작하면서 한겨레가 드릴 수 있는 말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신뢰’일 것이다. 언론 불신 시대에 신뢰를 잃은 언론은 살아남기 어렵다. ‘서포터즈 벗’은 달리 말하면 ‘한겨레 신뢰 회복 프로젝트’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인 셈이다. 그간 잘해왔으니 힘을 보태달라는 게 아니라, 부족했으니 분발하겠다는 다짐이다.
언론학자 강준만 교수는 ‘신뢰에 목마른 사람들’이란 한겨레 칼럼에서 “우선 목에서 힘을 빼야 한다. 목에 힘주던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라고 언론 현실을 지적했다.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이용자들에게 다가가는 것, 잘못했을 때 미적거리지 않고 사과하고 바로잡는 것, 복잡한 문제가 생길 때 먼저 저널리즘의 본령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 더디 가도 정확히 보도하는 것이야말로 신뢰 회복의 지름길이라 믿는다. “신뢰에 목마른 사람이 많다”는 강 교수의 고언을 다시금 새긴다.
‘벗’의 또다른 열쇳말은 ‘소통’이다. 이번에 한겨레는 ‘주주’와 ‘독자’라는 오랜 두 친구에 더해 후원회원을 세번째 벗으로 맞았다. 한겨레가 이들 세 친구와 열심히 소통하려는 것 역시 반성에서 출발한다. 창간 이후 33년 동안 7만 주주와 충분히 대화하지 못했다. 지난해 주주들께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첫 배당을 실시했을 뿐 주주·독자를 모시는 데 소홀한 점이 많았다.
디지털 후원회원제 도입은 이들 세 벗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겠다는 다짐이다. 세 벗들과 함께하지 않으면 한겨레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론이 불특정 다수에게 일방적으로 뉴스를 공급하며 군림하던 시대는 지났다. 종이신문 독자가 누구인지, 디지털 이용자가 누구인지, 그들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미래를 개척할 수 없다. 온·오프라인상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이용자들과 소통하면서 함께 콘텐츠를 만드는 선순환 구조를 갖추도록 노력할 것이다.
‘벗’의 세번째 열쇳말은 ‘콘텐츠’다. 민주주의와 평화, 불평등 해소 등 창간 초기부터 간직해온 한겨레의 가치에 더해 기후변화, 젠더, 청년 등 새로운 시대의 가치를 담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오랜 벗인 종이신문 독자에겐 ‘고품격 종이신문’으로 응답하고, 디지털에선 이른바 2030세대와 교감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일 것이다. 당장 큰 변화가 없더라도 꾸준히 노력할 테니 지켜봐 주시길 부탁드린다.
착한 콘텐츠가 착한 이용자들을 불러 모으고, 다시 그 이용자들의 착한 기운이 더 착한 콘텐츠를 생산하도록 북돋우고 밀어주는 착하디착한 구조야말로 ‘한겨레 서포터즈 벗’이 꿈꾸는 좋은 저널리즘의 미래다.
kcbae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