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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 아닌 글자

등록 2021-05-30 17:49수정 2021-05-31 02:07

[말글살이] 김진해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어릴 때 한자 중에 ‘용’(龍)자가 제일 멋졌다. 꼬리 쪽 획을 삐쳐 올려 쓰면 용이 꼬리를 튕기며 솟아오를 것 같았다. ‘부모 성명을 한자로 못 쓰면 상놈’이라는 소문에 아버지 이름에 있는 ‘목숨 수’(壽)자를 기억하려고 위에서 아래로 ‘사일공일구촌’(士一工一口寸)을 외웠다. 글자 하나가 이리 복잡한 걸 보니 목숨은 만만찮은가 보다 했다.

소리글자인 한글을 쓰다 보니 우리는 글이 말을 받아 적는 거라는 생각이 강하다. 하지만 글은 말의 졸개가 아니다. 글/자는 소리로 바꿀 수 없는 고유한 ‘문자성’이 있다. 글 자체는 시각적이다. 목소리를 가다듬듯이 글도 잘 읽히도록 공간적으로 ‘편집’된다. 서체를 비롯하여 들여쓰기, 문단 구분, 줄 간격, 쉼표, 마침표, 따옴표, 느낌표, 물음표, 말줄임표, 괄호와 같은 고유의 소통 장치를 쓴다.

시에도 글이 하나의 그림이 되는 구체시가 있다.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는 비가 내리듯, 에펠탑 앞에 선 듯, 애인의 초상화를 감상하는 듯하다. 황지우의 시 ‘무등’도 정삼각형 안에 시어를 배열하여 산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글자가 갖는 고유성을 활용한 예술과 디자인이 꽃을 피우고 있다.

다른 얘기지만, 학생들에게 야들야들한 명조 계열의 서체로 과제를 하라 해도, 열에 예닐곱은 울뚝불뚝한 고딕 계열을 고집한다. 내 말을 귓등으로 흘렸다기보다는 자신들의 문화와 취향의 표명이었다. 둘러보면 어디든 고딕체가 우위이다. 종이 매체가 아닌 온라인 매체에 쓰이는 글자는 고딕 계열이 압도적이다. 맥도날드의 방탄소년단 티셔츠에 새겨진 ‘ㅂㅌㅅㄴㄷ’도 고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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