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이 되고자 한 유대인의 정체성 찾기는 팔레스타인에서 고질적인 분쟁으로 귀결됐다. 팔레스타인 분쟁이나, 트럼프주의는 그런 정체성 운동이 불러온 거대한 역사적인 역작용이다.
정의길 ㅣ 국제부 선임기자
중동분쟁의 격화시켜 온 이스라엘의 강경 우익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결국 물러날 기미다. 하지만, 그의 퇴장이 중동분쟁에서 큰 변수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극우 민족주의 정당 ‘야미나’와 ’새로운 희망’이 ‘반네타냐후 연정’ 구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야미나의 대표 나프탈리 베네트가 차기 연정의 임기 전반에 총리를 맡기로 했다. 그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이 깨진 주요 원인인 서안 지구의 이스라엘 정착촌 운동의 지도자이다. 강화되는 유대 민족주의 조류가 그 배경이다. 1990년대 들어서 이스라엘의 인구 구성 및 정치적 지형 변화가 건국의 주역인 사회주의 성향의 노동당을 몰락시키고, 강경 우파 리쿠드당을 부상시켰다. 건국 이후 중동 지역에서 온 후발 이민자들이 늘어나자, 우파들은 이들을 기반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 집권을 이어왔다. 중동 지역에서 온 유대인들을 이스라엘에서는 ’세파르디’라 부른다. 세파르디는 본래 지중해 지역의 유대인들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북아프리카 등 지중해 연안의 중동 지역 유대인을 일컫는 말로 바뀌었다. 이스라엘 건국의 주도 세력인 동유럽 유대인인 아슈케나지는 중상류층을 형성하고 서방의 다원적 가치를 인정하는 반면, 이들은 경제적으로 중하류층인데다 훨씬 보수적이다. 이스라엘에 정착한 이후 자신들을 아랍계 주민과 대비하며 유대 민족주의 정체성을 강화하면서 보수화됐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지역 정착촌 개척민의 다수여서,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에 가장 반대한다. 이스라엘은 건국 70돌을 맞은 2018년 7월 기본법의 하나로 제정된 ‘민족국가법’에서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의 역사적 조국이며, 그들은 배타적 자결권을 지닌다”고 규정했다. 이스라엘을 ‘유대인들의 배타적 민족국가’로 선언한 것이다. 어떤 현대 헌법에서도 그 국가를 특정 민족이나 집단의 국가로 규정하는 조항은 없다. 유대인이 ‘민족’인지, ‘종교공동체 구성원’인지는 오래된 논쟁이다. 유럽에서 18세기 이후 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이에 기반해 반유대주의가 종교적 차원에서 인종주의적 차원으로 강화되자, 유대인들도 대항적 민족주의인 시오니즘으로 자구책을 찾았다. 이는 이스라엘 건국으로 이어졌다. 현재 유대인들은 고대 팔레스타인 땅의 유대 주민들의 후손이기 때문에, 그 땅에 대한 권리가 있다는 것이 시오니즘의 중심 담론이다. 그런 주장이 증명된 바는 없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 역사 교수 슬로모 잔드는 <유대인의 발명>이라는 저서에서 서기 1세기 로마가 반란을 일으킨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에서 몰아낸 디아스포라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고, 서기 7세기 무슬림들의 팔레스타인 점령 때에도 아랍인들의 입식은 없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현재의 유대인들은 예수 탄생 이전부터 지중해 지역에서 활발했던 유대교 포교로 인한 개종자들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과거 유대 주민들은 팔레스타인 땅에 대부분 남아서 기독교도를 거쳐 무슬림으로 개종해서, 현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오히려 혈연적으로 가깝다고 주장했다. 건국의 아버지 다비드 벤구리온도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유대인과 같은 동족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분석이 아니어도,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분쟁은 지독한 모순이다. 나치에 의해 인종주의적 박해를 당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디엔에이(DNA) 분석 등을 통해 자신들이 인종적으로 과거 유대 주민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아리안족 우월성을 증명하려는 나치의 우생학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20세기 초 빈의 저명한 유대교 랍비이자 유대사학자 모리츠 귀드만은 시오니즘이 반유대주의의 이면일 뿐이라며 “대포와 총검을 장착한 유대교는 다윗과 골리앗의 역할을 뒤집어서 우스꽝스러운 모순을 자아낼 것”이라고 섬뜩하게 미래를 예언했다. 유대인 사회주의자들은 민족과 인종의 정체성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의 국제적 연대만이 유대인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시오니즘에 반대했다. 대중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보편적으로 향상시키려는 진보운동이 활로를 찾지 못하면, 민족이나 인종, 젠더, 종교 등 정체성에 기댄 운동이 무성해진다. 소수와 약자의 정체성에 바탕해, 이들의 지위를 향상하는 운동은 필요하지만, 결코 그것만으로는 안 되고, 그런 정체성 운동이 주류가 돼서는 안 된다. 팔레스타인 분쟁이나, 트럼프주의는 그런 정체성 운동이 불러온 거대한 역사적인 역작용이다. 우리의 민주진보 진영도 젠더와 세대 담론에 빠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Egil@hani.co.kr
지난 15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있는 통신 등 외국 언론사들이 입주한 건물에 이스라엘의 포탄이 떨어지고 있다. 가자/AP 연합뉴스
중동분쟁의 격화시켜 온 이스라엘의 강경 우익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결국 물러날 기미다. 하지만, 그의 퇴장이 중동분쟁에서 큰 변수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극우 민족주의 정당 ‘야미나’와 ’새로운 희망’이 ‘반네타냐후 연정’ 구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야미나의 대표 나프탈리 베네트가 차기 연정의 임기 전반에 총리를 맡기로 했다. 그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이 깨진 주요 원인인 서안 지구의 이스라엘 정착촌 운동의 지도자이다. 강화되는 유대 민족주의 조류가 그 배경이다. 1990년대 들어서 이스라엘의 인구 구성 및 정치적 지형 변화가 건국의 주역인 사회주의 성향의 노동당을 몰락시키고, 강경 우파 리쿠드당을 부상시켰다. 건국 이후 중동 지역에서 온 후발 이민자들이 늘어나자, 우파들은 이들을 기반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 집권을 이어왔다. 중동 지역에서 온 유대인들을 이스라엘에서는 ’세파르디’라 부른다. 세파르디는 본래 지중해 지역의 유대인들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북아프리카 등 지중해 연안의 중동 지역 유대인을 일컫는 말로 바뀌었다. 이스라엘 건국의 주도 세력인 동유럽 유대인인 아슈케나지는 중상류층을 형성하고 서방의 다원적 가치를 인정하는 반면, 이들은 경제적으로 중하류층인데다 훨씬 보수적이다. 이스라엘에 정착한 이후 자신들을 아랍계 주민과 대비하며 유대 민족주의 정체성을 강화하면서 보수화됐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지역 정착촌 개척민의 다수여서,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에 가장 반대한다. 이스라엘은 건국 70돌을 맞은 2018년 7월 기본법의 하나로 제정된 ‘민족국가법’에서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의 역사적 조국이며, 그들은 배타적 자결권을 지닌다”고 규정했다. 이스라엘을 ‘유대인들의 배타적 민족국가’로 선언한 것이다. 어떤 현대 헌법에서도 그 국가를 특정 민족이나 집단의 국가로 규정하는 조항은 없다. 유대인이 ‘민족’인지, ‘종교공동체 구성원’인지는 오래된 논쟁이다. 유럽에서 18세기 이후 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이에 기반해 반유대주의가 종교적 차원에서 인종주의적 차원으로 강화되자, 유대인들도 대항적 민족주의인 시오니즘으로 자구책을 찾았다. 이는 이스라엘 건국으로 이어졌다. 현재 유대인들은 고대 팔레스타인 땅의 유대 주민들의 후손이기 때문에, 그 땅에 대한 권리가 있다는 것이 시오니즘의 중심 담론이다. 그런 주장이 증명된 바는 없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 역사 교수 슬로모 잔드는 <유대인의 발명>이라는 저서에서 서기 1세기 로마가 반란을 일으킨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에서 몰아낸 디아스포라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고, 서기 7세기 무슬림들의 팔레스타인 점령 때에도 아랍인들의 입식은 없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현재의 유대인들은 예수 탄생 이전부터 지중해 지역에서 활발했던 유대교 포교로 인한 개종자들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과거 유대 주민들은 팔레스타인 땅에 대부분 남아서 기독교도를 거쳐 무슬림으로 개종해서, 현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오히려 혈연적으로 가깝다고 주장했다. 건국의 아버지 다비드 벤구리온도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유대인과 같은 동족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분석이 아니어도,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분쟁은 지독한 모순이다. 나치에 의해 인종주의적 박해를 당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디엔에이(DNA) 분석 등을 통해 자신들이 인종적으로 과거 유대 주민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아리안족 우월성을 증명하려는 나치의 우생학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20세기 초 빈의 저명한 유대교 랍비이자 유대사학자 모리츠 귀드만은 시오니즘이 반유대주의의 이면일 뿐이라며 “대포와 총검을 장착한 유대교는 다윗과 골리앗의 역할을 뒤집어서 우스꽝스러운 모순을 자아낼 것”이라고 섬뜩하게 미래를 예언했다. 유대인 사회주의자들은 민족과 인종의 정체성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의 국제적 연대만이 유대인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시오니즘에 반대했다. 대중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보편적으로 향상시키려는 진보운동이 활로를 찾지 못하면, 민족이나 인종, 젠더, 종교 등 정체성에 기댄 운동이 무성해진다. 소수와 약자의 정체성에 바탕해, 이들의 지위를 향상하는 운동은 필요하지만, 결코 그것만으로는 안 되고, 그런 정체성 운동이 주류가 돼서는 안 된다. 팔레스타인 분쟁이나, 트럼프주의는 그런 정체성 운동이 불러온 거대한 역사적인 역작용이다. 우리의 민주진보 진영도 젠더와 세대 담론에 빠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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