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ㅣ정치부 선임기자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거의 모든 대통령이 개헌을 시도했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김종필 총재는 3당 합당을 하며 내각제 개헌 합의 각서를 썼다.
1997년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내각제 개헌을 공약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은 4년 연임제 원포인트 개헌을 제의했다.
2011년 이명박 대통령은 “올해 국회에서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개헌하면 늦지 않다”고 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건을 덮기 위해 개헌을 제의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안을 실제로 발의했다. 국회에서 표결에 부쳤지만 투표 불성립 처리된 뒤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역대 대통령의 개헌 시도가 실패한 원인은 두가지다.
첫째, 진정성이 없었다. 대통령들은 대개 정치적 위기 돌파를 위해 개헌을 추진했다. 야당은 이런 개헌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 야당이 반대하면 개헌은 안 된다.
둘째, 바로 대통령이 추진했기 때문이다. 헌법은 주권자인 국민의 뜻에 따라 제정하고 개정해야 한다.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에서 절대다수로 의결하고 국민투표를 거치도록 한 것도 그 때문이다.
개헌을 꼭 해야 할까? 해야 한다. 사람만 바꿔서는 개혁이 안 된다. 제도를 바꿔야 한다.
한국헌법학회가 최근 회원들을 대상으로 개헌에 관한 인식조사를 했다. 개헌에 찬성하는 의견이 76.9%였다. 찬성하는 이유는 ‘새로운 기본권 등 인권보장을 강화하기 위해’라는 대답과 ‘대통령 또는 국회의 권한이나 임기를 조정하기 위해’라는 대답이 많았다.
새로운 기본권은 정보화 혁명과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한 가치관을 반영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통령 또는 국회의 권한이나 임기 조정은 승자독식 대통령제를 고쳐야 한다는 뜻이다.
개헌은 쉽지 않다.
첫째, 차기 대선 주자들이 반대한다. 개헌으로 자칫 자신이 대통령이 안 될까 봐 걱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이재명 경기지사가 “경국대전을 고치는 일보다 국민 구휼이 훨씬 더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실망스럽다. 길게 보면 경국대전을 잘 고쳐야 구휼을 잘할 수 있다.
둘째, 반정치주의 탓이다. 개헌하면 대통령의 권력을 국회로 넘기는 방향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게 민주주의에 부합한다. 그런데 자본 기득권 세력과 그 앞잡이들은 국회와 국회의원, 정당에 권력이 넘어가는 것을 싫어한다. 민주주의가 싫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한꺼번에 많은 내용을 고치기는 어렵다. 여야 합의가 가능한 선에서 ‘최소 개헌’을 시도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첫째, 국무총리 후보자 선출제다.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조항을 “국무총리는 국회가 후보자를 선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로 고치면 된다. 대통령 권력을 나누기 위한 첫걸음이다.
둘째, 대통령 피선거권 연령 제한 폐지다. 최근 이준석 바람 덕분에 40세가 넘어야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조항이 헌법에 있다는 것을 많은 국민이 알게 됐다. 20~30대 유권자의 정치 참여를 위해 반드시 없애야 한다.
셋째, 개헌 국민발안권 회복이다. 개헌 국민발안권은 유신헌법 개정 당시 폐지됐다. 2020년 강창일 의원 등 국회의원 148명이 국회의원 선거권자 100만인 이상도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다는 내용의 개헌안을 발의했다.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런 정도 내용을 담은 ‘최소 개헌’도 지금 당장은 어려울 것이다. 대선 경쟁이 이미 시작됐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개헌이 가능할까?
내년 대선에 나서는 모든 주자가 개헌을 공약할 것이다. 개헌의 내용보다 시기가 더 중요하다. ‘대통령 임기 첫해 개헌’을 약속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약속하지 않으면 정치개혁 의지가 없는 것으로 비판해야 한다.
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대통령 당선인과 여당과 야당이 함께 개헌 약속을 지키도록 몰아붙여야 한다. 국회에서 개헌특위를 구성해서 여야 합의로 개헌안을 발의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2022년 안에 개헌을 완료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코로나 방역과 백신 접종 양쪽에서 모두 성공한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가 될 것 같다. 우리 국민의 저력 덕분이다. 그 실력으로 개헌도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