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16일(현지시각) 롱아일랜드 철도 승객이 마스크 차림으로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뉴욕 AP/연합뉴스
노은주·임형남 | 가온건축 공동대표
영업허가를 받지 않고 개인 승용차로 불법 영업을 하는 택시를 ‘나라시 택시’라고 불렀는데 요즘은 거의 사라졌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나 유흥가의 영업이 끝날 무렵 택시가 부족해 난처해진 사람들이 주로 이용했다. 특히 역이나 고속버스터미널 주변에서 막차를 놓쳐 난감해하고 있을 때, 모르는 사람이 조용히 다가와 어디 가냐고 물어본다. 그리고 방향이 맞는 사람을 몇명 모아서 각자의 집까지 마치 배달하듯 하나씩 떨궈놓고 가곤 했다. 물론 불법인데다 생각해보니 무척 위험하긴 했지만, 지금보다 훨씬 교통수단이 부족하던 시절 나름의 운송수단이었다.
그런 나라시 택시를 없앤 것은 바로 스티브 잡스라고, 우연히 만난 전직 나라시 택시운전자가 말해주었다. 한창때는 하룻밤 새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하며 꽤나 일이 많았고 지역 영업권 확보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등등 한때 번성했다 사라진 고대 문명에 대한 군주의 회상처럼 아련한 이야기 끝에 갑자기 스티브 잡스 때문이라니? 예전에는 버스나 기차의 운행 정보를 미리 알기 어렵고 예매도 쉽지 않아, 늦은 시간에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무조건 터미널까지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단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사람들이 예매 시간에 맞춰 나오거나 막차 시간에는 아예 나오지 않게 되는 바람에 영업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사람들의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 덕에 세상은 똑똑해지고, 과거의 어떤 미래소설도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 차량에 꼭 비치해두던 두툼한 도로 안내 지도가 사라지고, 다들 하나씩 차고 다니던 손목시계도 장식의 기능으로 축소되었다. 카메라는 말할 것도 없고, 전자계산기며 내비게이션, 일정과 메모를 책임지던 ‘다이어리’라고 불리던 수첩들, 심지어 나침반·수평계 등 전문적인 도구마저도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갔다.
가장 위태로운 것은 우리의 여가와 교양을 책임져주던 책마저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뉴스를 보기 위해 신문을 살 필요도, 텔레비전 앞에 갈 필요도 없다. 각종 음악 관련 기기, 라디오, 이제는 심지어 피시(PC)의 역할까지 대신하며, 이루 셀 수도 없이 많은 기능들이 한없이 손바닥만한 스마트폰으로 수렴되고 있다.
몸도 머리도 손도 한없이 가벼워져 우리는 가만히 앉은 채로 온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직접 조사하고 오류를 판단하는 대신 남들이 정리한 정보를 손쉽게 받아들고 믿는다. 스마트폰의 세상에서, 약속을 하면 만날 때까지 기다리곤 했던 설렘, 우연한 만남, 더듬더듬 새로운 지식을 찾아가는 기쁨 같은, 몸과 마음에 경험과 기억을 새기던 수많은 물건과 시간들까지 함께 사라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