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마을 꼬맹이들이 초승달을 쳐다보며 왜 저렇게 생겼냐 묻는다. “하나님이 쓰는 물잔이라 목이 마르면 물을 부어 마신다”고 했다. “정말요?”(이게 끝이면 좋으련만, 엄마한테 달려가 ‘엄마! 하나님이 초승달로 물을 따라 마신대’라며 일러바친다. 헉, 잽싸게 피신.)
인간의 본성 중에서 좋은 게 하나 있다. 뭔가를 ‘잘 못하는 능력’이다. 잘할 수 있는데도, 잘 못하는 능력. 가장 빠른 길을 알면서도 골목길을 돌아 돌아 유유자적하는 능력. 방탄소년단 수준의 춤 실력이 있지만 흥을 돋우려고 막춤을 추고, 더 먹을 수 있지만 앞사람 먹으라고 젓가락질을 멈춘다. 당신도 목발 짚은 사람이 있으면 앞질러 가기가 미안해 걸음을 늦출 것이다. 다른 동물들은 자신의 능력을 덜 발휘하지 않는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 새들은 최선을 다해 울고, 고양이는 있는 힘껏 쥐를 잡는다. 너나없이 최선을 다하는 사회는 야수사회다.
가진 능력보다 잘 못하게 태어났음을 보여주는 증표가 농담이다. 농담은 심각한 말의 자투리이거나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간식이 아니다. 그 심각함과 진지함 자체가 ‘별것 아님(!)’이라 선언하는 것이다. 허세가 아니다. 외려 가난할수록, 나이 들수록, 난관에 처했을수록, 다른 꿈을 꿀수록 ‘실’없고 ‘속’없는 농담은 힘이 된다.
농담을 잘하려면 엉뚱하면 된다. 관행과 법칙과 질서에 비켜서면 된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마음에 사이공간이 생긴다. 거기서 놀면 된다. 다른 세상은 농담으로 앞당겨진다. 우리의 목표는 능력이 아니라, 웃음이다. 즉, 모두의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