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피해를 당한 뒤 `극단적 선택'에 내몰린 이 아무개 공군 중사의 부모가 28일 오전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성남/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성추행 피해 신고 뒤 숨진 공군 이아무개 중사의 유족이 “국방부의 수사 의지가 없다”며 국회 국정조사를 요청했다. 고인의 부모는 28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지금의 국방부 수사본부(조사본부)와 감사관실 차원의 조사는 부적절하고, 국정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엄정한 수사를 지시했는데도 유족이 또다시 눈물로 “진실을 밝혀달라”고 호소하고 있으니 참담할 따름이다.
유족의 불신은 지난 한달 동안 여론에 떠밀려 이뤄져온 국방부의 소극적인 수사·감사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국방부는 유족의 기자회견을 몇 시간 앞두고 ‘부실수사’와 ‘2차 가해’ 책임자들을 잇따라 보직 해임하고 형사 입건을 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부실 초동수사 담당 수사관 1명만 입건하려 했다가, 피해자가 근무했던 공군20전투비행단 군사경찰대대장에 대해서도 형사 입건이 필요하다는 수사심의위원회의 권고가 나오자 이날 뒤늦게 입건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육해공군 군사경찰과 군무원으로 짜인 군 최고 수사기관이다. 상급 군사경찰(국방부 조사본부)이 하급 군사경찰(공군 군사경찰)의 부실 초동수사를 조사하는 식이라, 처음부터 ‘제식구 감싸기’가 될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국방부 감사관실도 감사 결과 드러난 의혹을 적극적으로 수사 의뢰하기보다는 군검찰 수사심의위에 의견을 구하겠다는 태도다. 국방부는 애초 군 수사 과정의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를 위해 민간 검찰과 유사하게 민간인이 참여하는 ‘군검찰 수사심의위원회'를 운영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유족은 “수사심의위가 국방부의 방패막이로 느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병영문화 개선 민관군 합동위원회’가 출범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출범식에서 “민관군 합동위원회가 정의와 인권 위에 강하게 신뢰받는 군대로 진화해나가는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거창한 이정표를 말하기 전에 유족의 신뢰부터 얻어야 할 것이다. 만약 눈치보기 식 뒷북 수사를 되풀이한다면 더 이상 국방부에 맡길 수 없고 국정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