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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원칙 허문 문 대통령의 ‘박근혜 사면’, 개탄스럽다

등록 2021-12-24 18:21수정 2021-12-24 20:30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전자상가에서 시민이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전자상가에서 시민이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특별사면했다. 국민 통합이라는 대의, 박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 등을 고려했다고 한다. 사면이 비록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고 하지만,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이번 사면은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부패 범죄 사범에 대해선 사면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문 대통령 스스로 허물었을 뿐 아니라, 사면 취지로 내건 국민 통합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사면과 관련해 “우리 앞에 닥친 숱한 난제들을 생각하면 국민 통합과 겸허한 포용이 절실하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5년 가까이 복역한 탓에 건강 상태가 많이 나빠진 점도 고려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사면이 생각의 차이나 찬반을 넘어 통합과 화합, 새 시대 개막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사면에 반대하는 분들의 넓은 이해와 해량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문 대통령의 발언은 대통령 후보 시절 약속한 ‘사면권 최소화’ 원칙에 어긋난다. 또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한 찬반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내세웠던 “국민 공감대”라는 선결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을 5대 중대 부패범죄로 규정하고 여기 해당하는 범죄자는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공약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특별사면에서 이 원칙을 비교적 충실하게 지켜왔다. 사면 횟수가 다섯차례로 역대 정권에 비해 적은 것도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사면으로 지금까지 쌓아온 공든 탑을 스스로 허물어버렸다. 문 대통령이 약속한 기준에 따르면 뇌물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징역 22년을 선고받고 5년째 수감 생활을 이어온 박 전 대통령은 사면 대상이 될 수 없다. 사면을 앞두고 여론 수렴이나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없었다는 점 또한 그동안 강조해온 ‘국민 공감대’ 원칙에 어긋난다. 문 대통령이 대변인을 통해 당부한 “국민의 이해와 해량”이 쉽지 않은 이유다.

박 전 대통령 사면이 ‘국민 통합’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다. 우리 국민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이 통합은커녕 더 큰 분열과 갈등의 씨앗으로 작용했던 사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더구나 박 전 대통령은 ‘공정’과 ‘정의’를 요구하는 촛불 시민들의 힘으로 탄핵되고 법의 심판까지 받았다. 이런 점에서 ‘촛불정신의 계승자’를 자처해온 문재인 정부의 박 전 대통령 사면은 심각한 자기 부정이자 ‘촛불에 대한 배신’이라 비판받아 마땅하다.

사면의 시점도 문제다. 청와대는 이날 “선거 관련 고려는 전혀 없었다”고 했지만, 대통령 선거일을 75일 앞두고 이뤄진 박 전 대통령 사면이 선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믿을 국민이 몇이나 되겠는가. 야당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야권 일부에선 박 전 대통령 사면을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가석방과 연결짓는데 얼토당토않은 주장이다. 이 전 의원은 재판 과정에서부터 지은 죄에 견줘 형량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있었을 뿐 아니라, 국제앰네스티 등 국제 인권기구들로부터 지속적인 석방 요구가 이어져왔다. 무엇보다 그는 형기의 85%인 8년3개월을 복역하며 가석방의 법적 요건을 이미 채웠다. 사면 자체가 부당한 박 전 대통령과 묶어 시비를 걸 일이 아니다. 억지 부리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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