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제20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자유·인권·공정·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고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취임사는 새 정부 5년의 국정 목표와 원칙을 국민들에게 설명하는 수단이다. 윤 대통령은 당면한 위기와 난제를 해결하는 열쇳말로 ‘자유의 확대’를 강조했지만, 시대적 요구인 ‘통합’과 ‘협치’는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대화와 타협 대신 일방적 국정 운영을 예고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정치가 민주주의의 위기로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며 그 원인으로 ‘반지성주의’를 지목했다. 그는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직접 넣었다는 ‘반지성주의’라는 표현은 사실상 거대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자신에게 비판적인 이들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또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돼야 한다”며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라고도 했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이견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적 관점에서 사실관계를 다투며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것인가. 자신을 향한 비판과 견제는 ‘억압’이라고 바라보는 것도 어불성설이요, 국민들을 ‘지성’과 ‘반지성’으로 갈라치기 하고 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취임사엔 한국 사회의 현안 해결을 위한 구체적 실행 방안이 뚜렷이 보이지 않았다.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사에서 자신이 추진할 정책 방향을 명시했던 것에 견주면 매우 이례적이다. 대신 윤 대통령이 주요하게 내세운 것은 ‘자유’다. 그는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바로 자유의 확대”라고 했다. 그는 앞서 자신에게 영감을 준 책으로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여러차례 꼽은 바 있는데, 이 책에서 강조하는 자유는 시장의 경쟁과 개인의 책임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코로나 19 대확산 이후 각국이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 해소를 위해 국가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흐름이다. 취임사에 복지 확대나 분배 등이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읽힌다. 그가 “지나친 양극화와 사회 갈등”을 언급하며 “도약과 빠른 성장”을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도 개발독재 시대의 성장만능주의를 연상시킨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 앞에는 국내외의 녹록지 않은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선 협치로 야당의 협조를 최대한 끌어내고, 통합의 정치를 통해 국민적 에너지를 모아내야 한다. 국정의 무한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