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22일 오전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찾아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 소재 보관장에서 ‘한국형 원전’(APR1400)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창원/대통령실사진기자단
환경부가 원전을 녹색 에너지로 분류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 개정안을 20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처음으로 제정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서 제외됐던 원전은 9개월 만에 녹색경제활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원전 최강국 건설’이라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기조에 발맞춰 환경부가 원전 업계에 ‘녹색 투자’의 물길을 열어준 것이다. 특히 이날 공개된 녹색분류체계는 유럽연합(EU)보다 훨씬 느슨한 조건을 제시하고 있어 ‘그린워싱’(위장 친환경) 논란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녹색분류체계는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녹색경제활동)의 범위를 정한 것으로 녹색 투자의 지침서로 활용된다. 일종의 ‘친환경 인증서’라 할 수 있다.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되면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지배구조)를 중시하는 기업이나 투자자한테서 자금을 조달하기가 쉬워진다. 녹색경제활동에 포함되려면 6대 환경 목표(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물의 지속가능한 보전, 자원 순환, 오염 방지 및 관리, 생물다양성 보전) 중 하나 이상의 달성에 기여해야 한다. 목표 달성 과정에서 다른 환경 목표에 심각한 피해를 줘서도 안 된다.
원전은 저탄소 발전원이어서 온실가스 감축에는 도움이 되지만, 방사성폐기물과 방사능 오염 등 심각한 환경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유럽연합에서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킬지 여부를 두고 큰 논란이 빚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유럽연합은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시켰지만, 대신 까다로운 조건을 달았다.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방폐장)을 완공해 운영하기 위한 세부 계획 보유, 2025년부터 안전성이 강화된 ‘사고 저항성 핵연료’ 사용 등이다.
그러나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는 유럽연합과 견줘 지나치게 ‘원전 친화적’이다. ‘사고 저항성 핵연료’ 적용 시점을 유럽연합보다 6년 늦은 2031년으로 정했다.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대로 수십년째 부지 선정조차 못한 방폐장은 유럽연합과 달리 가동 시점을 정하지 않았다. 유럽연합은 신규 건설 때 ‘최적 가용 기술’(가능한 최적의 기술)을 적용하도록 했지만, 한국은 이에 못 미치는 ‘최신 기술 기준’을 적용한다. 원전 확대의 걸림돌을 없애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녹색분류체계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가 ‘그린워싱’을 막는 것인데, 되레 원전에 녹색 분칠을 하는 데 활용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