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2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출근길 약식 회견에서 “여가부(여성가족부) 폐지는 여성, 가족, 아동, 사회적 약자의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도 “여가부 폐지가 오히려 대한민국의 성평등을 강화할 수 있는 체계”라고 밝혔다. 21년간 유지돼온 ‘성평등 정책 컨트롤타워’를 없애면서, 여성 보호와 성평등이 오히려 강화될 거라고 강변하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국내 여성단체들은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숱한 우려를 쏟아내는 이유를 생각해보기는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윤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부처를 폐지하더라도 기존에 맡고 있던 기능들은 없애는 것이 절대 아니다”라며 “시대 변화에 맞춰 보다 기능적으로 강화하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여가부가 맡던 여성·가족·청소년 업무는 생애주기 복지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로, 여성 고용 지원 업무는 고용노동부로 넘기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윤 대통령과 안 수석의 발언은 성평등 관점이 관철되어야 할 여성·가족 정책을 단지 정부의 여러 사업 중 하나로 여기는 협량한 시각을 드러내 보여줄 뿐이다. 독립 부처가 아닌 타 부처 산하 본부로 위상이 낮아지면 범정부 차원의 법령 제·개정, 정책 수립, 예산 편성 등의 과정에서 성평등 관점을 통합하는 ‘성 주류화’ 추진체계가 약화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윤 대통령은 약식 회견에서 “소위 말해서 권력 남용에 의한 성비위에 대해서도 ‘피해호소인’이라고 하는 그런 시각에서 완전히 탈피하자는 것이다. 여성 보호를 더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사건 때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부르고, 여가부가 그 사건에 대해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일을 거론한 것이다. 당시 민주당 의원 등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 일이 여가부를 없애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여가부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위상을 강화하는 것이 순리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의 인식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김 장관은 이날 “여가부가 폐지된다면 상당히 중요한 일을 한 장관으로 평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대통령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좇으며 ‘여가부의 역사적 소명’을 끝내려 하면서도 일말의 책임감을 찾아보기 어렵다. 윤 대통령과 정부는 더 이상 궤변을 늘어놓지 말고 ‘성평등 전담 기구 강화’라는 국제사회의 보편 규범을 따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