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26일 서울 광화문 시도지사협의회 사무실에서 열린 ‘국토부-시도지사 협의회 회장단 간담회'에서 원희룡(오른쪽 끝) 국토부 장관이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함께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집값·전셋값이 떨어지면서 전세보증금을 못 돌려주는 ‘깡통전세’가 속출하고 있다. 수도권의 신축 빌라와 오피스텔에선 처음부터 돈을 떼먹을 목적을 가진 ‘전세사기’ 의심 거래도 대규모로 드러나고 있다. 보증금을 돌려줄 경제력이 없는 ‘바지’들에게 수백, 수천 채의 소유권이 넘어가 있고, 그들이 사망해 피해가 커진 사례도 최근 여러건 나왔다. 많은 피해자들이 고통을 호소하며 더 적극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데 정부가 귀기울여야 한다.
전세사기의 심각성을 드러낸 것은 지난 10월13일 빌라와 오피스텔 1139채를 소유한 김아무개씨 사망이 계기가 됐다. 김씨는 ‘빌라왕’으로 불리지만, 전세사기꾼들에게 명의만 넘겨받은 ‘바지’일 가능성이 크다. 다른 재산이 없고, 거액의 국세를 체납해 집을 압류당했다. 김씨 소유 집 가운데 세입자가 전세보증보험을 통해 보증금을 찾아간 사례가 이미 133건, 김씨 사망으로 대위변제를 진행하다 중단된 것이 38건이다. 보증사고 금액은 334억원이나 된다.
김씨보다 더 많은 보증보험 사고를 낸 ‘빌라왕’도 많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94건에 646억원의 보증 사고를 낸 박아무개씨를 비롯해 7명이 김씨보다 더 많은 금액의 보증 사고를 냈다. 이를 보면, 깡통전세나 전세사기 파장은 앞으로 더 확산될 게 뻔하다.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세입자의 피해는 훨씬 커진다. 김씨 소유 주택의 경우 전체 세입자의 절반 가까이가 보증보험에 들지 않았다. 경매 절차를 거쳐 보증금을 일부 회수하는 수밖에 없는데, 집주인이 체납한 국세가 있으면 회수액은 줄어든다. 법적 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세입자들이 적잖은 고통을 겪을 것이다.
정부가 지난 9월1일 ‘전세사기 피해 방지 방안’을 발표했는데, 피해자들의 고통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김씨 소유 주택 일부 임차인들은 27일 세종시 국토교통부 청사 앞에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촉구했다. 국토부는 30일부터 ‘전세사기 전담 대응 조직’을 구성해 운영할 예정이다. 법률 상담과 안내에 그치지 말고, 적극적으로 피해를 구제할 방안을 찾아 실행해야 한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범죄 전말을 밝혀내 범죄자들을 처벌하고 배상 청구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 사기를 주도한 건축주와 분양대행업자 등을 수사해 하루빨리 단죄해야 한다.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경찰의 발이 너무 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