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신임 통일부 장관이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일부가 남북 대화·교류·협력을 담당하는 조직을 형해화하는 ‘부처 폐지’ 수준의 조직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통일부를 “북한 지원부”로 몰아붙이며 북한을 적대시하는 인식을 강조해온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를 고스란히 반영해, 정치적인 의도로 통일부를 겨냥하려는 행보가 우려스럽다.
문승현 통일부 차관이 지난 28일 발표한 조직 개편안은 남북 회담·교류협력·출입 업무를 맡아온 통일부의 핵심 부서들을 통폐합해 사실상 없애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문 차관은 통일부 전체 인원의 15%인 80명 이상의 인력 감축을 예상한다고 밝혔다. 대신 장관 직속으로 납북자와 국군 포로, 북한 억류자 문제를 다루는 ‘납북자 대책반’을 신설하고, 북한 정보의 경우 수용소 등 인권 분야에 대한 분석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이날 발표는 윤 대통령이 극우적 대북 인식으로 논란에 휩싸인 김영호 통일부 장관의 임명을 강행하기 직전에 나왔다. 권영세 전 장관에서 김 장관으로 교체되는 시기에 부처 위상을 완전히 바꾸는 밑그림이 공표된 것인데, 대통령실이 문 차관을 통해 부처의 주요 업무를 좌우하는 ‘차관 정치’의 대표적 사례로 꼽힐 만하다. 이번 개편안은 “통일 및 남북 대화·교류·협력에 관한 정책의 수립”을 통일부의 역할로 규정한 정부조직법과 충돌한다는 논란도 나온다.
대통령실은 왜 이렇게 ‘통일부 죽이기’에 집중하고 있는가. 북한이 핵 개발에 주력하면서 한국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보이고 대화·교류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부 기능에 일부 조정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북한은 최근 대남 부서를 없애는 등 ‘두개의 한국’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통일부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하려는 데는 전임 정부의 남북 대화 노력을 ‘종북’으로 낙인찍고, 북한을 적대시해 극우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 윤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교류를 추진한 전임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 “적의 선의에 의존한 가짜 평화”라고 비난해왔고, 지난달 자유총연맹 창립 69돌 연설에서는 “자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정권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앞으로의 국제 정세 변화와 남북 대화 재개 가능성에 대비할 조직적 역량마저 모두 없애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실이 정부조직법 등을 무시하고 정권 입맛에 맞춰 통일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오만함은 더욱 위험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