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10월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현희 표적감사’ 의혹과 관련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를 받고 있는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과 사무처 직원들이 공수처의 소환에 불응하고 있다고 한다. 국가 최고 감찰기관이 전 정권 인사에 대한 ‘표적감사’ 혐의로 수사를 받는 것도 민망한 일인데, 수사기관의 정당한 조사에 집단적으로 불응하다니 국가기관이 이렇게 막 나가도 되는 건가. 공직기강을 바로잡아야 할 헌법기관이 오히려 헌법질서를 무너뜨리고 있으니, 감사원이 이렇게까지 망가진 때가 또 있었나 싶다.
이 사건 핵심 피의자인 유병호 사무총장은 이미 세차례나 출석을 거부한 바 있다. 앞서 두차례는 국정감사를 핑계로, 세번째는 ‘조사 순서’를 이유로 출석을 거부했다고 한다. 사무처 직원 조사를 먼저 한 뒤에 소환하면 응하겠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유 총장 주도로 ‘전현희 사건’ 주심인 조은석 감사위원뿐 아니라 6명의 감사위원 전원을 ‘패싱’한 사실이 확인됐다. 감사원 최고 의결기구인 감사위원회의 합의 없이 감사 결과를 확정하는 건 ‘국기문란’ 행위에 해당한다. 이처럼 중대 범죄 피의자인 처지에 수사기관의 조사 순서까지 문제 삼다니, 유 총장은 대체 누굴 믿고 이리 오만한가. 덩달아 사무처 직원들도 참고인 신분임을 내세워 공수처 조사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감사원 차원에서 공수처 수사를 ‘보이콧’하는 모양새다. 이런 감사원이 어떻게 공직기강을 바로잡겠나. 정작 감사원은 그동안 피감기관이 소환에 응하지 않으면 ‘감사 방해’로 검찰에 고발해오지 않았던가.
감사원이 공수처 소환에 집단 불응하는 것은 내년 1월 김진욱 공수처장이 임기를 마칠 때까지 버티려는 의도로 보인다. 전 정권 때 임명된 김 처장이 공수처를 떠나면 감사원에 대한 수사가 흐지부지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공수처장 임명권을 가진 윤석열 대통령이 어떤 공수처장을 임명할지 감사원도 잘 아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공수처가 정권의 ‘돌격대’ 역할을 자임하는 감사원 수뇌부를 기소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 윤 대통령이 새 공수처장을 임명하지 않고 공수처를 ‘수장 공백’ 상태로 만들어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 공수처가 감사원뿐 아니라 ‘해병대 수사 외압’과 ‘김학의 봐주기 수사’ 의혹 등 윤 대통령과 검찰 관련 의혹 사건을 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수처도 ‘이후가 없다’는 생각으로 수사에 최대한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