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를 상대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낸 이용수 할머니가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 승소 판결을 받은 뒤 “감사합니다”라며 두 손을 모으고 있다. 백소아 기자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유족들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음을 재확인하는 법원 판결이 23일 나왔다. 2021년 서울중앙지법에서 일본 정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 나온 데 이어 이번엔 상급 법원인 서울고등법원이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전쟁 시기 ‘군 위안부’와 같은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국가는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원칙을 천명한 것으로, 역사적·법적으로 의미가 큰 판결이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은 두 갈래로 진행돼왔다. ‘1차 소송’으로 불리는 고 배춘희 할머니 등 피해자·유족 12명의 소송은 2021년 판결로 승소한 뒤 일본 정부가 항소하지 않아 확정됐다. 반면 이용수 할머니와 고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등 피해자·유족 16명이 제기한 ‘2차 소송’에서는 ‘소송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각하 판결이 내려졌다. 법원의 판결이 서로 엇갈리면서 혼란이 있었는데, 이날 2차 소송의 항소심에서 1차 소송과 같은 결론이 나오면서 사법부 판단이 통일성을 갖추게 됐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주권 국가인 외국 정부에 대해서는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국가면제’ 법리를 ‘위안부’ 문제에도 적용해야 하느냐였다. 이날 재판부는 유엔 협약과 외국 사례 등을 근거로 들며 “재판이 열리는 나라의 영토 내에서 그 국민에 대해 발생한 불법행위에 대해선 그 행위가 (외국의) 주권적 행위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내용의 국제 관습법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2021년 판결과 마찬가지로,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러 타국의 개인에게 손해를 입한 국가는 국가면제 법리에 기댈 수 없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사법부는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강제동원 소송에서는 일찍이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이제 ‘위안부’ 소송에서도 일관된 사법부 견해가 확립된 셈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대일 저자세 외교 속에 사법부 판단마저 왜곡하며 ‘과거사 덮기’에 급급하다. 강제동원 관련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제3자 변제’라는 양보안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법치국가라면 정부는 사법부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판결 취지에 맞게 역사적 정의 실현과 국민의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일본 정부도 한국 정부의 일방적 양보를 즐기기만 할 게 아니라 진정성 있는 과거사 해결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