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9월4일 오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금융감독원이 올해 들어 11월 말까지 금융회사를 불러 개최한 간담회가 43건이라고 한다. 2020년 6건, 2021년 26건, 2022년 1~5월 13건이었는데, 이복현 금감원장이 취임한 지난해 6월7일 이후 2022년에만 37차례, 올해 들어 43차례 등 눈에 띄게 많아졌다. 1주일에 약 한번꼴로 금융회사들을 소집한 것이다.
5일 한겨레가 금융감독원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분석해보니, 간담회는 금융지주와 은행뿐 아니라 증권, 보험, 자산운용 등 업종을 가리지 않았고, 대상도 최고경영자(CEO)부터 최고리스크책임자(CRO), 최고투자책임자(CIO), 준법감시인, 금융소비자, 외국인 유학생 등을 포괄했다. 상생금융이나 불법공매도, 프로젝트파이낸싱(PF) 같은 대형 안건뿐 아니라 독감보험이나 채권추심 같은 비교적 자잘한 이슈까지 모두 간담회 형식으로 소화했다. 실무자들을 통한 일상적인 업무 협조로 처리할 수 있는 사안까지 금융회사들을 한군데 불러 모아 군기 잡듯이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점령군 같다’는 업계 불만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이 원장의 전시행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이 원장은 이른바 ‘창구지도’를 통해 은행 대출금리 인하를 강요했다. 마치 ‘도장 깨기’ 하듯 은행을 잇달아 방문해 시장금리에 구두 개입하는 행태에 대해 보수언론에서조차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로 인해 주춤하던 가계부채가 다시 급증하고, 하향안정화 되어가던 부동산 시장이 다시 꿈틀거렸다. 물가 상승과 미국발 기준금리 인상에 대응하려던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정책이 흔들렸음은 물론이다.
또 절차상으로 보면, 이 원장의 일련의 행위가 월권에 해당될 수 있다는 점이다. 법 체계상 금감원은 금융위원회가 만든 제도와 정책을 통해 금융회사와 시장의 건전성을 감독하는 집행기관이지 정책부서가 아니다. 이 원장은 금리 인하 말고도 금융회사 지배구조나 성과급 체계 개편 등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이 모든 게 월권인 셈이다.
이 원장의 선을 넘는 행태 뒤에 ‘검찰 선배’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뒷배가 있음은 물론이다. 대통령 심복이 금감원장이 되자, 마치 금감원이 금융위 위에 군림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비정상이며 후진적이다. 대한민국이 법치를 버리고 왕조시대의 인치로 돌아갔단 말인가. 이 원장은 이번 총선 개각에서도 차출되지 않고 남을 계획이라고 한다. 기왕에 남기로 했다면 더는 구시대적 인치로 시스템 불안을 자초하지 말고 법규에 따른 금융기관 감독·관리에 충실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