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용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2017년부터 2년여 동안 미국 최대 에너지 회사인 ‘엑손모빌’ 자회사로부터 고액의 임대료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 ‘로비’ 논란이 일었다. 11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조 후보자는 중개인을 통해 이뤄진 정상적인 부동산 임대 계약이고, 이 회사 관계자와는 한번도 만난 적 없다고 해명했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여전히 많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엑손모빌 국내 자회사인 ‘모빌코리아윤활유’는 2017년 9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조 후보자의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단독 주택에 3억2천만원 근저당을 설정했다. 이 기간 동안 조 후보자는 외교부 차관에서 물러나 게이오대 객원연구원으로 일본 체류 중이었지만, 가족들은 이 집에 계속 거주했다고 한다. 청문회에서 조 후보자는 모빌코리아윤활유가 2·3층 공간을 월세 950만원에 임차하기로 계약했으며, 가족들은 1층에 거주했다고 해명했다. 조 후보자 주택 1층은 근린생활시설로 취사나 난방 시설을 설치할 수 없어 1층에 가족이 거주했다면 불법이다. 모빌코리아윤활유 지사장이 조 후보자 가족과 한집에서 같이 살았다는 것인데,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미국 기업이 준 고액 임대료가 외교부 요직에 있던 조 후보자 관리용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조 후보자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갑작스럽게 공직을 그만둬 다시 공직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지 않았다”며 자신에게 특혜를 줄 이유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조 후보자는 앞서 에이엔제트(ANZ)은행(오스트레일리아 앤드 뉴질랜드 뱅킹그룹)에도 해당 주택을 임대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이 무렵 주오스트레일리아 대사를 지냈다.
왜 미국 등 외국 대기업들이 한국 고위 관료와 전관들의 집을 골라 거액 임대료를 주는지 석연치 않다. 조 후보자는 이후 주미대사와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을 거쳐 국정원장에 지명됐다. 한국 외교안보 핵심 고위 공직자를 관리하고 영향을 미치려는 로비가 아닌지, 의혹이 제기되는 건 당연하다. 이 문제가 명쾌하게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익과 직결된 정보와 기밀을 다루는 국정원장에 적절한지도 여전히 의문이다.
윤석열 정부 고위 공직자 가운데 한덕수 국무총리와 권영세 전 통일부 장관도 자택을 모빌오일코리아, 모토롤라 등 미국 기업에 임대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이런 행태가 과연 이들에게만 국한된 것인지 좀 더 전반적인 실태조사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