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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군사주권 포기하는 ‘전작권 환수 연기’ 추진 중단해야

등록 2010-06-23 21:30수정 2010-06-24 09:22

정상적인 나라는 반드시 군대 지휘권을 가져야 한다. 제 나라 군대의 지휘를 외국 군대 사령관한테 맡기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 1994년 북한 핵 위기에서 미국은 북한 폭격을 포함한 전쟁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엄청난 피해가 예상되자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대판 싸워” 가까스로 전쟁을 막았다고 뒷날 회고했다. 한국 대통령이 외국 대통령과 싸워야 했던 이유는 작전통제권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해 12월 김 대통령은 평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면서 “자주국방의 기틀을 확고히 했다”고 평가했다. 2012년에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기로 한 2007년 한-미 합의는 때늦었지만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곧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만나 전작권 환수를 재론한다고 한다. 한국 쪽 요청에 따라 환수 시점을 연기한다는 데 사실상 의견 접근이 이뤄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군사주권 포기에 해당하는 일을, 그것도 아무런 공론화 과정도 없이 밀실에서 추진해왔다니 놀랍다. 일부 퇴역장성들과 정치권에서 전작권 환수 반대를 외칠 때만 해도 워낙 구시대적 발상에 젖어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정부가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한·미 두 나라 사이에는 2012년 전작권 환수 일정을 늦출 아무런 사정 변경이 없다. 1980년대 이래 20여년의 전력 증강에 따라 한국군은 대북 억지·격퇴 능력을 진작에 확보했다. 한국군이 미군과 협력하되 주도적으로 작전을 지휘할 능력을 갖췄음도 2007년에 두 나라가 평가를 마쳤다. 일각에서 천안함 사태로 인한 안보환경 악화를 거론한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하더라도 작전권의 소재와는 무관한 문제다. 단적인 예로 평시작전 총책임자인 합참의장은 사건 발생을 뒤늦게 보고받고 술에 취해 후속 대응도 소홀히 했다고 한다. 한국군 자체의 경계·지휘·대응 체계를 재점검할 일을 두고 외국과의 작전권 문제로 비화시키는 것은 책임 회피다. 이런 논법이라면 평시작전권도 미국에 되넘겨줘야 한다.

전작권 환수를 늦출 경우 우리나라가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우리 정부가 매달려 환수 연기를 요청하는 것인 만큼, 미국은 마지못해 응하는 척하면서 자신의 요구목록을 내밀 것이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평택 미군기지 확장사업 비용의 한국 쪽 부담 증액, 한국군의 아프간 파병 확대,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 참여 등이 그것이다. 밀실협상이 진행돼온 까닭에 부적절한 거래가 이뤄질 우려는 더욱 크다.

군사주권은 그 자체로 최상위 가치다. 한반도 정세에 큰 변화를 줄 사태가 발생할 경우 우리가 전작권을 갖고 있어야 선택 폭을 갖고 안전을 지켜나갈 수 있다. 앞으로 있을 한반도 평화협정 협상에서 우리나라가 당사자 지위를 높이기 위해서도 전작권 환수는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여러 안보정책들이 퇴행했지만 전작권 문제는 군사주권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 정부는 명분도 실익도 없는 퇴행적 발상을 즉각 거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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