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4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 국방부 장관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수행했던 김 실장은 “(정상회담 후속으로 열린 남북 국방장관 회담을 앞두고) 노 대통령이 엔엘엘(NLL) 문제와 관련해 소신껏 하고 오라고 말했고 그 결과 소신껏 엔엘엘을 지킬 수 있었다”고 밝혔다. 남북정상회담과 엔엘엘 문제의 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 실장이 오랜 침묵을 깨고 중요한 증언을 하고 나선 것이다.
김 실장은 이날 “나와 청와대 참모진·통일부 사이에 상당한 이견이 있었다”고 말했으나 그것은 문제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당시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 김장수 국방부 장관 사이에 벌어진 갈등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엔엘엘 문제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태도가 무엇이었는가인데, 김 실장은 이를 명쾌하게 정리한 셈이다.
사실 노 전 대통령이 엔엘엘을 포기했다는 말이 거짓임은 국가정보원이 무단으로 공개한 정상회담 발언록을 통해서도 이미 확인된 바다. 표현상 다소 거친 대목이 있긴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줄기차게 강조한 것이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정을 통한 군사적 긴장 해소에 있었음은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엔엘엘 문제는 사태의 본질은 어디로 가버리고 지엽말단을 놓고 불필요한 국력 낭비를 계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가기록원에 정상회담 대화록이 남겨지지 않은 사실이 발견되면서 정치적 소모전이 더욱 확산되는 양상이다.
새누리당은 심지어 국정원이 보관중인 음원 파일을 공개하자는 요구마저 내놓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옮기는 과정에서의 사소한 변화, 예를 들어 정상회담 당시 ‘저는’이라고 말한 것을 ‘나는’으로 고친 것 따위를 들추어내 이를 정치쟁점화하자는 데 속셈이 있는 듯하다. 외국 정상들과의 회담 뒤 대화록을 작성하면서 전체 맥락과 관계없는 일부 표현을 수정하는 것은 통상적인 관행이다. 그런데도 비본질적인 문제를 꼬투리 잡아 본질을 호도하려는 새누리당의 태도가 참으로 안타깝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정상적으로 국가기록원에 넘어가지 않은 경위를 밝히는 일은 물론 필요하다. 이에 따른 책임을 묻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엔엘엘 포기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이제 확실히 접을 때가 됐다. 현 정권 안보 핵심책임자이기도 한 김 실장의 증언을 듣고서도 새누리당과 보수세력은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엔엘엘 포기 발언이 드러날까 겁나서 대화록을 폐기하도록 지시했다’는 식의 엉뚱한 주장을 계속 늘어놓을 셈인가. 제발 이성과 상식을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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