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관련 고발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이 참고인인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공개소환하면서 피의자인 새누리당의 김무성·권영세 전·현직 의원은 서면조사로 끝내려 하고 있다. 사안의 경중이나 신분을 고려하면 앞뒤가 바뀐 노골적인 편파수사가 아닐 수 없다. 검찰이 아예 대놓고 여당 쪽에 꼬리를 흔드는 꼴이,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이 사건은 대선개입으로 ‘전면 개혁’ 위기에 몰린 ‘남재준 국정원’이 대화록을 무단 공개하면서 본격화했다. 이후 대화록 원본 실종 논란까지 빚어졌지만 문제의 핵심은 대화록을 지난 대선에 불법적으로 이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대화록이 김무성 의원 손에 들어가 집회에서 낭독하기까지 국정원 등 정부와 여당 대선캠프 사이에 조직적 대선공작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것이다.
김 의원은 지난해 12월14일 부산 유세에서 대화록 원문과 토씨까지 일치하는 내용을 낭독해 방송 카메라에까지 잡혔다. 그 뒤 지난 6월26일 당 비공개회의에서 “지난 대선 때 이미 그 대화록을 입수해 다 읽어봤다”고 재확인까지 했다. 권영세 전 의원 역시 “엠비 정부, 원세훈 원장 바뀐 뒤… 청와대에 보고, 어떤 경로로 정문헌한테 갔는데”라며 “이거는 우리가 집권하게 되면 까고…”라고 대화록 유출 경위와 활용 구상을 밝힌 녹취록이 공개된 바 있다.
이처럼 두 사람 모두 중요한 혐의사실을 스스로 고백한 게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소환조사도 않고 서면진술로 넘어간다는 건 사실상 “봐주겠다”는 의사표시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수사의 기본상식을 뒤엎는 처사다.
그뿐 아니다. 수사를 지휘하는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지난달 중순 김 의원 쪽에 서면조사서를 보내놓고도 7일 “아직 조사 방법을 결정하지 않았다”고 거짓 문자로 기자들을 속이려 했다. 그가 누구인가? 그는 지난달 2일엔 사건 핵심인 참여정부 청와대 인사들에 대한 소환조사도 않은 상태에서 “원본과 최종본 사이에 의미 있는 차이가 있다”는 등 이상한 내용의 중간발표를 해 여당에 정치공세 거리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서는 “선거법 무죄를 확신한다”며 수사에 영향을 끼치려는 발언을 하는 등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냈다. 국정감사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 옷 벗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느냐”는 추궁까지 받았다. 이런 전력을 볼 때 그가 거짓 문자를 보낸 의도 역시 짐작이 간다.
“내가 사표 낸 다음에 하라”며 국정원 트위터글 수사를 방해한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까지 이 사건 지휘 라인은 문제투성이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외부의 시선을 의식한다면 최소한 절차 면에서라도 균형을 맞출 법하건만 이들의 눈에는 오로지 청와대와 여당만 보이는 모양이다. 검사도 정치적 의견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이를 수사에 편향적으로 반영하면 그게 바로 정치검사다. 서울중앙지검의 정치검사들을 그대로 두고는 수사 결과가 신뢰를 얻기 힘들다.
조 지검장과 이 차장은 이런 정치적 처신으로 검찰 조직 전체를 나락에 빠뜨린 죄과를 역사가 엄정하게 판단할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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