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사건 수사의 요체는 범행의 동기와 범행 수법, 범행의 결과를 명확한 증거에 입각해 치밀하게 재구성하는 일이다. 어느 한 가지라도 앞뒤가 맞지 않거나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잘 된 수사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검찰은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실종을 고의적 범죄행위로 몰아가면서도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충족하지 못했다. 애초 장담한 ‘과학적 입증’은커녕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 무리한 억지 추론, 짜맞추기 결론으로 점철된 엉터리 수사였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수사의 가장 핵심적인 대목에서부터 거짓말을 했다. 검찰이 대화록의 고의적 변경·삭제 등의 근거로 내세운 것은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의 일관된 진술”이었으나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조 전 비서관은 17일 기자회견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대화록 삭제 지시나 국가기록원에 이관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기억이 없다”고 밝혔다. 조 전 비서관은 “지난 1월 검찰 조사에서 부정확한 기억을 토대로 잘못된 진술을 했으나 7월 이후 검찰 조사에서는 부정확한 기억이라고 정정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의 이런 진술을 고의적으로 무시한 채 ‘일관된 진술’로 몰아간 것이다. 이는 수사의 신빙성을 밑바탕부터 흔드는 중대한 사실관계 왜곡이다.
검찰은 범행의 동기, 즉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을 대통령기록관으로 보내지 않은 이유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아무리 뜯어 맞춰 보려고 해도 그럴 이유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10월20일 대화록 초본을 읽은 뒤 수정을 지시한 문건을 보면 반대되는 정황만 확연해진다. “앞으로 (남북)회담을 책임질 총리, 경제부총리, 국방장관 등이 공유해야 할 내용이 많은 것 같다” “한 자 한 자 정확하게 다듬고(…) 정확성 완성도가 높은 대화록으로 정리하여 이지원에 올려 두시기 바란다” ….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는 검사라면 이 문건을 읽으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나쁜 짓을 하고 있는지 부끄러움을 느꼈어야 옳다.
검찰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범행의 결과에서도 마찬가지다.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을 삭제·은폐했다면 지금 대화록이 남아 있지 않아야 옳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심지어 노 전 대통령은 “대화록을 국정원에서 보관하면서 다음 대통령이 필요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함으로써 차기 대통령과의 정보 공유를 위한 세밀한 배려도 했다. 이런 선의를 무시한 채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국정원의 무단공개라는 ‘범죄행위’를 저지른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다.
검찰이 새누리당의 정치공세에 도움을 주려고 얼마나 노심초사하고 있는지는 잘 알지만 충성심을 입증하려면 좀 더 그럴듯한 수사 결과를 내놓아야 했다. ‘부실 감찰’을 비롯해 요즘 검찰이 내놓는 결과물은 하나같이 엉성하고 치졸하기 짝이 없다. 충성심만 앞서고 능력은 제대로 뒷받침이 안 되는 ‘무능한 정치검찰’이야말로 가장 꼴불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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