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한 해는 결국 이렇게 저물어가고 있다. 영하의 혹한 속에 거리에는 사생결단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10만여명의 노동자·시민들과 1만3000여명에 이르는 경찰의 정면대결. ‘근혜산성’의 차벽 너머 울려 퍼지는 정권 퇴진의 구호 소리. 국민의 가슴에 희망의 물줄기는 고사하고 여차하면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대포 세례가 쏟아질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첫해는 막을 내리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국민의 기억 속에 박 대통령이 웃는 모습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대통령의 화사한 웃음은 화려한 패션을 뽐내며 외국 나들이를 했을 때뿐이다. 국민을 상대로 해서는 성난 얼굴을 보인 것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눈에 거슬리는 것은 모두 박살내고 청소하고 뿌리뽑고 섬멸하고 척결하고 응징하고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 표현의 연속이었다. 대통령이 성난 얼굴로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은 고단하다.
영하 3도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민들이 서울광장에 모여든 것은 단지 철도 민영화 저지에 뜻을 보태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혹한보다 더한 칼바람 정치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 표시로 읽힌다. 박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 정녕 피해야 할 것은 아버지의 수레바퀴 자국이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지난 1년간 끊임없이 아버지의 수레바퀴 자국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때 그 시절, 철권통치의 징그러운 역사 속으로 국민을 다시 끌고 갔다. 서울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함성은 박 대통령의 빗나간 정치행태에 대한 분노가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정운영을 ‘권력의 힘자랑’과 동의어로 착각하는 정부는 불행하다. 정치는 결코 수갑과 경찰 진압봉, 최루탄과 물대포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통령 스스로 지혜의 부족, 자신감의 상실, 리더십의 결여를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리력에 의존하는 정부는 강한 정부가 아니라 가장 약한 정부다. 생각이 다른 국민을 다독거리고 설득하는 끈기, 반대 진영에 대해 한쪽 문은 닫되 또 다른 한쪽 문은 열어두는 너그러움과 여유야말로 진정한 강한 정부의 징표다.
강경대응을 통한 사태 해결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정부가 경찰을 동원해 철도노조 수배자를 모두 잡아들이고, 직권면직 등 온갖 위협과 협박으로 노동자들의 무릎을 꿇린다 치자. 그것은 치유가 아니라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이며, 갈등은 더욱 심화될 뿐이다. 그러면 박 대통령 자신은 안녕해질 것인가. 힘을 앞세워 국민을 억누르는 권력이 결코 안녕하지 못했다는 것은 지난 역사가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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