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9일 설 전후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실무접촉을 하자는 우리 정부의 제안을 거부했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이산가족들의 실망이 클 것으로 보인다.
북쪽의 거부는 올바른 선택이 아니다. 북쪽은 남쪽의 군사훈련과 ‘우리의 제안도 함께 협의할 의사’ 등을 이유로 들었는데, 이산가족 상봉을 다른 사안과 연계하는 것은 인도적 자세가 아니다. 남쪽의 군사훈련은 특별히 북쪽을 자극하는 것이 아닌 연례적인 내용이다. 북쪽 태도는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힌 김정은 신년사의 취지와도 어긋난다.
우리 정부 역시 책임이 작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하면서도 북쪽이 바라는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 등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9월 상봉 예정일을 며칠 앞두고 무산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 문제임을 고려할 때, 북쪽이 이번 제의를 순순히 받아들일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8일에는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는 정부 고위 당국자의 발언이 나왔다. 북쪽으로선 남쪽이 관계 개선보다는 자신의 체제 변화를 꾀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는 양쪽 당국이 전술적인 판단만 해서는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관계 진전이 한반도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을 주고 통일의 밑거름이 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내세우거나 상대의 굴복을 압박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특히 서로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고 작은 대화의 싹이라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일은 이런 면에서 양쪽 모두 미흡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정부는 좀더 분명한 의지를 갖고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기를 바란다. 구체적인 노력 없이 말로만 통일을 얘기해서는 오히려 한반도 긴장을 더 높일 수도 있다. 3월까지 양쪽의 군사훈련이 줄줄이 예정된 터라 더 그렇다. 북쪽 또한 먼저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못할 까닭이 없다. 북쪽은 “좋은 계절에 마주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 계절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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