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 결과는 ‘반쯤 물이 찬 잔’과 같다. 어떤 면을 보느냐에 따라 실망할 수도, 아니면 만족할 수도 있는 매우 절묘한 구도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선방한 선거’라고 자족하기에는 서울과 충청권의 참패, 부산 등 텃밭에서의 부진이 뼈아픈 대목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거둔 성적표는 세월호 참사로 조성된 유리한 선거환경을 고려하면 ‘사실상의 패배’라고 해야 옳다. 문제는 정치권이 이런 선거 결과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이느냐다. 이는 앞으로 여야의 미래와도 직결된 것이다.
여야는 일단 “국민의 선택을 겸허히 받겠다” “안주하지 않고 각고의 변화와 쇄신을 이뤄내겠다”는 등의 성명을 앞다투어 토해냈다. 청와대 역시 “한표 한표에 담긴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국가개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다짐이 선거가 끝나면 늘 나오는 형식적 수사를 넘어 정말 뜨거운 진심이 담긴 말인지는 참으로 의문이다.
새누리당은 벌써 선거 결과에 만족감을 표시하면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집중하느라 전교조 출신 교육감들이 많이 진출한 것”이라고 교육감 선거 결과에 딴죽을 걸고 나섰다. 선거 결과의 ‘겸허한 수용’의 자세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보기 어렵다. “표에 담긴 국민의 뜻을 깊이 헤아리겠다”는 발표를 하기가 무섭게 곧바로 구태의연한 편가르기와 색깔론, 이념공세로 회귀했다.
사실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동정표’에 기대어 선거를 치른 사실부터 부끄럽게 여겨야 옳다. 백성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제 눈물을 닦아달라’고 읍소해 얻어낸 선거 결과를 창피하게 여기지 않는 한 어떤 변화와 쇄신도 기대할 수 없다. 새누리당은 새로운 당-청 관계의 확립은 고사하고 대통령의 뜻만 더욱 살피는 무기력한 여당이 될 것이다. 청와대 역시 아무리 국정운영을 잘못해도 고정 지지층이 박 대통령을 지켜줄 것이라는 오만함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당면한 상황은 오히려 여당보다 훨씬 심각하다. 야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 자신의 독자적인 힘으로는 정국을 헤쳐갈 능력도 의지도 없는 무기력한 정당임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그나마 세월호 사건이 없었으면 이 정도의 결과도 거두지 못했으리라는 것이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야당은 세월호 사건에 분노한 국민이 알아서 정부여당을 심판해줄 것이라는 믿음 말고는 뚜렷한 선거전략도 없었다. ‘싸우는 야당’의 이미지를 탈피하는 데 급급했을 뿐 제대로 된 수습책도, 들끓는 민심을 야당 지지로 돌리 수 있는 신뢰감도 보이지 못했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보인 리더십의 빈곤은 심각한 상태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쨌든 읍소작전을 통해서라도 고정 지지층을 끌어오는 데 공을 세운 것과는 대조적으로 야당 지도부는 존재감 자체를 보이지 못했다. 특히 안철수 공동대표는 자신이 전략공천한 윤장현 광주시장 후보의 당선에만 힘을 쏟느라 다른 지역은 제대로 돌보지도 못했다. 야당 지도부가 좀더 활동 반경을 넓혔더라면 경기와 인천 등에서 다른 선거 결과를 낳았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야당 지도부는 이런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이기는커녕 자신들을 합리화하는 데만 신경을 쓰고 있으니 혀를 찰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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