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식을 마치고 청와대로 들어가기 전에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희망 복주머니’ 행사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최순실 게이트’에는 오방낭, 영세교, 팔선녀 등 생경한 단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최순실 게이트의 전모를 파악하려면 ‘최순실 용어사전’이 필요하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오방낭이 대표적이다. 오방낭은 이번에 최순실씨의 태블릿피시에 저장돼 있는 200여개 파일 중 하나의 제목으로 등장했다. 오방낭은 우주의 중심을 뜻하는 황색과 각각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청백적흑의 5가지 색을 이어붙여 만든 우리나라의 전통 복주머니다.
2013년 2월25일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식 뒤 청와대로 들어가기 전에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희망 복주머니’ 행사에 참석했다. 박 대통령이 세종대왕 동상 앞에 설치된 초대형 오방낭을 개봉하자 그 안에서 365개의 작은 복주머니들이 달린 ‘희망이 열리는 나무’가 나왔다. 각각의 오방낭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국민 공모로 접수한 희망들이 담겨 있었다. 박 대통령은 이 중 3개를 뽑아 직접 읽었다.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당부한 집배원,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을 요청한 40대 가장, 장애인 행정절차 개선을 요구한 장애인의 글이었다. 박 대통령은 “희망의 복주머니에 담긴 소망이 이뤄지도록 돕는 것이 저와 새 정부가 할 일이다. 복주머니를 전부 청와대로 가져가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그때 텔레비전으로 이 장면을 보면서 괜찮은 행사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행사가 최순실씨의 머리에서 나왔고 그의 아버지인 최태민씨의 사이비종교인 영세교와 무관하지 않다는 정황이 이번에 드러났다.
박 대통령의 임기가 1년4개월 남은 지금, 당시 오방낭에 담겼던 소망 중 이뤄진 게 얼마나 될까? 비정규직 문제처럼 그동안 되레 악화된 게 부지기수 아닐까? 어쩌면 그 나무는 처음부터 희망이 아닌 ‘절망의 나무’일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안재승 논설위원
jsah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