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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아침햇발] 통합의 그랜드 디자인이 필요하다 / 백기철

등록 2017-05-23 17:56수정 2017-05-23 19:00

백기철
논설위원

노무현 정부는 집권 초 로드맵 만들기에 열심이었다. 국정과제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연차별로 추진 일정을 짜는 일이었다. 국정이 로드맵대로 되지는 않지만, 국정의 밑그림을 그려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기서 더 나아가 통합의 그랜드 디자인을 설계해야 한다. 평면적 국정과제 로드맵으로는 부족하다. 문재인판 대통합의 로드맵, 한국형 대타협 프로그램의 틀을 짜야 한다.

문 대통령의 최근 행보는 ‘호시우행’이란 말을 떠올리게 한다. 호랑이의 눈빛으로 인사와 개혁 조처들을 밀어붙이면서도 한걸음씩 널리 아우르며 나아가는 소걸음 행보다. 이런 호시우행이라면 문 대통령이 개혁과 통합을 씨줄과 날줄 삼아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나라로 가는 초석을 닦을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한다.

문 대통령이 통합을 국정의 최우선 순위 중 하나로 두어야 할 이유는 많다. 첫째, 촛불의 궁극적 명령은 통합된 나라를 만들라는 것이다. 통합은 정의를 통해 실현된다. 지금 시대의 정의는 격차를 해소하고, 갑질과 정경유착을 근절하고, 권력기관을 개혁하는 것이다. 개혁은 국민통합시대로 가는 핵심이다. 여러 개혁을 추진하면서 통합의 관점을 유지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결과는 판이해질 수 있다.

둘째, 큰 개혁을 하자면 큰 통합이 필요하다. 사회의 틀을 크게 바꾸고, 나라의 물줄기를 틀기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 대통합이 필요하다. 큰 통합을 하려면 몇몇 핵심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하려 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의 핵심 요구도 일정 부분 수용해야 한다. 문 대통령에게 지금 가장 시급한 국정과제는 일자리 만들기와 북핵 위기 해소다. 이들 문제에서 의미있는 돌파구를 찾으려면 통합과 협치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최소한 저항이 크게 조직화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일상적인 협치부터 큰 틀의 통합 프로그램까지 전방위적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현실정치에서 지금처럼 통합과 연대, 협치의 조건이 무르익은 적이 없다. 개혁적 연대, 통합적 개혁이 가능한 조건이다. 사실 협치나 연대 없인 개혁이 불가능한 구조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문재인+안철수+심상정 개혁연대, 더 나아가 유승민까지 포함하는 개혁 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절실하다. 사안별로 협치하거나 몇몇 의제에 대해선 포괄적 협치를 모색할 수도 있다. 아직 내각을 구성 중인 만큼 야당 인사들의 입각도 삼고초려의 자세로 야당들과 정중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

개헌 역시 통합의 주요 과제다. 내년 6월을 목표로 한 개헌까지는 권력구조 문제 등에서 숱한 우여곡절이 있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결론이 나든 나라의 틀을 크게 바꾸는 합의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개헌에 사심없이 임해 미래 한국의 새 청사진을 열어놓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넷째, 통합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통치수단이다. 통합은 힘이 세고 오래간다. 나홀로 개혁으론 한계가 있다. 87년 이후 6명의 대통령을 겪었지만 뒤로 가면서 어려워지곤 했다. 문 대통령이 집권 초 통합, 협치, 대타협의 기반을 잘 닦아놓으면 집권 내내 탄탄한 국정운영을 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시절 문 대통령이 얻은 별명은 ‘고구마’였다. ‘사이다’ 이재명 후보에 비해 답답하다고 해서 그렇게 불렸다는데, 문 대통령은 “고구마는 배가 부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버팀목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고구마처럼 든든하고 뚝심있게 개혁과 통합의 길을 걷길 바란다.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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