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민이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됐다. 23일 광화문광장 1주기 추모대회에서 울려퍼진 대로 ‘백남기’라는 이름은 국가폭력과 인권유린 없는 ‘생명·평화 세상’을 염원하는 마음을 상징하는 말이 됐다. 그러나 고인의 이름에 담긴 염원이 실현되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백남기 농민은 2015년 11월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다 지난해 9월25일 숨을 거두었다. 고인이 쓰러져 숨지기까지 국가가 보인 모습은 인권이라는 말이 들어설 여지가 없을 정도로 무자비하고 잔인했다. 경찰은 물대포를 맞아 쓰러진 그에게 계속 물대포를 쏘아댔다. 살인적인 ‘직사 물대포’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숨을 거둔 뒤에도 인권유린은 그치지 않았다. 서울대병원은 고인의 사망 원인을 외부 충격과 무관하다는 듯 ‘병사’라고 고집했다. 극우사이트와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합세해, 현장에서 함께 물대포를 맞은 ‘빨간 우의’를 범인으로 몰아간 것도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검찰과 경찰이 이런 거짓 선동에 발을 맞춰, 고인의 주검을 부검하겠다며 벌인 시신 탈취 소동은 고인을 두 번 죽이는 짓이나 다름없는 반인륜 행위였다.
백남기 농민 사건은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될 국가폭력의 전형적인 사례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고 책임자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권이 교체된 뒤인 지난 6월 서울대병원이 고인의 사인을 ‘외인사’로 바로잡고, 사망 1년이 다 된 지난 19일 정부가 공식 사과한 것이 전부였다. 유가족은 당시 진압에 관여했던 경찰관 7명을 고발했지만, 검찰은 지금까지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고 있다. 그사이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은 아무런 사과도 없이 퇴임했고, 다른 경찰관들은 내부징계도 받지 않고 현직을 지키고 있다. 이렇게 진상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으니, 유가족이 경찰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찰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내달 출범할 예정이다. 첫 조사 대상으로 백남기 농민 사건을 선정할지를 놓고 위원들이 논의 중이라는데, 좌고우면하지 말고 이 사건을 먼저 채택해 진상을 명백히 밝혀내기를 바란다. 검찰도 수사에 최대한 속도를 내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백남기 농민 1주기에 국가폭력이 사라지는 날을 기원하며 거듭 옷깃을 여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