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속 드러나는 국가정보원의 ‘적폐’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원세훈 국정원’뿐 아니라 ‘남재준 국정원’ 역시 정치개입과 증거인멸 등 온갖 불법행위를 조직적으로 저지른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한겨레>에 따르면 2012년 11월 댓글공작이 폭로되자 국정원은 2차장을 팀장으로 ‘현안 티에프(TF)’를 꾸렸다고 한다. 이듬해 4월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게 되자 칸막이 공사를 해 가짜 사무실을 만들고 가짜 서류까지 갖다 놓아 검찰을 감쪽같이 속였다. 또 공판이 시작되자 파견검사를 팀장으로 한 ‘실무 티에프’를 가동해 짜맞춘 시나리오로 법정 증언에 앞서 리허설까지 했다. ‘검찰 조사의 불법성을 강조하라. 강요에 의해 진술하고 서명날인을 강요당했다고 증언하라’는 지침도 내렸다. 가히 조작의 달인답다.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과 최근까지 부산지검장으로 있던 장호중 당시 국정원 감찰실장, 변창훈 법률보좌관(현 서울고검 검사) 등 측근들로 꾸려진 이른바 ‘7인회’에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2급 비밀이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일반문서로 재분류해 당시 여당 정보위원들에게 공개하도록 한 방침도 여기서 나왔다.
불법행위를 자문하고 기획하는 데 파견검사들이 주도적 구실을 했다는 건 충격적이다. 알량한 법률지식을 국기문란 행위를 은폐·조작하고 법치주의의 기본인 수사·재판을 왜곡하는 데 사용했다. 동료들이 작성한 검찰 조서까지 ‘강요’에 의한 것으로 왜곡하려 했다니 검사라는 호칭이 낯뜨거울 정도다. 정의로운 검사는 못 되더라도 최소한 ‘법률기술자’로서의 양식이라도 갖췄다면 이런 범죄에 가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내용만으로도 이번 사건은 검찰과 국정원 등 권력기관 개혁에 심각한 교훈을 던져준다. 국정원 ‘메인 서버’ 검색을 내부 직원이 전담하면서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격”이란 지적이 나오는 상황은 우려할 만하다. ‘국정원 개혁 실패’의 과거사가 말해주듯 ‘겉핥기식 청산’으로 미봉할 경우 정권 바뀌는 즉시 정치공작이 되살아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김기춘-우병우만 문제가 아니다. 철저하게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면 제2의 김기춘, 우병우뿐 아니라 제2의 장호중도 곳곳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서훈 국정원장과 문무일 검찰총장은 더이상 머뭇거려선 안 된다.
장호중 전 국정원 감찰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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