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은 출간되던 해 읽었다. 그러나 올해 나온 영화는 보지 않았다. 산성에 들어가기 전 그들 사이에 오가던 출구 없는 말이 성안에서 되풀이되는 것을 다시 보는 게 너무 괴로울 것 같았다.
1636년, 홍타이지는 조선이 항복해오지 않으면 11월26일에 공격을 개시하겠다고 일찌감치 공언했다. 인조와 신료들은 홍타이지의 편지를 읽었을 것이다.
“귀국이 산성을 많이 쌓았지만 나는 마땅히 큰길을 통해서 곧장 경성으로 향할 것인데 산성을 가지고 나를 막을 수 있겠는가. 귀국이 믿는 것은 강화도이지만 내가 만일 팔도를 유린하면 일개 작은 섬으로써 나라가 되겠는가. 귀국에서 의논을 주장하는 자는 유신(儒臣)이니 그들이 붓을 들어 우리를 물리칠 수 있겠는가.”(<연려실기술>, 인조조 고사본말)
홍타이지는 12월9일에 압록강을 건너 도성을 향해 곧바로 내달려서는 강화도로 가는 길목을 막았다. 결국 임금은 산성을 나와 이마를 땅에 찧었고, 백성은 어육이 되었다.
그에 앞서 35년 전, 임진전쟁 때의 공을 따지는 자리에서 선조는 말했다.
“왜란의 적을 평정한 것은 오로지 중국(명나라) 군대의 힘이었고 우리나라 장수들은 중국 군대의 뒤를 따르거나 혹은 요행히 패잔병의 머리를 얻었을 뿐으로 일찍이 제힘으로는 한 명의 적병을 베거나 하나의 적진을 함락하지 못하였다. 그중에서도 이순신과 원균 두 장수는 바다에서 적군을 섬멸하였고, 권율은 행주에서 승첩을 거두어 약간 나은 편이다.”(<선조실록> 34년 3월14일)
전쟁이 터지자 도성을 버리고 피란을 떠나던 선조가 의병을 일으키라고 보낸 격문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 있다.
“나는 생각하기를, 종사가 망하고 신민을 버릴지언정 (명 황제와 나 사이) 군신의 대의는 하늘이 밝게 내려다보고 있기에…”(<송호유집> 하, 임진년 8월11일)
선조는 ‘사대’라는 조선의 외교전략을 한참 잘못 알았다. 일찍이 태종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동방을 생각하면, 땅은 메마르고 백성은 가난하고 국경이 중국과 접하였으므로, 진실로 마음을 다하여 사대하여 한 나라를 보전하는 것이 마땅하다. 만약 피할 수 없는 경우이면, 곡식을 축적하고 병사를 훈련하여 국토를 잘 지키는 게 마땅하다.”(<태종실록> 14년 6월20일)
명종 때 사헌부가 한 상소가 정곡을 찌르고 있다.
“대국을 섬기는 것은 단지 자기 백성을 잘 보호하기 위해서일 뿐이니, 혹시라도 대국을 섬겨야 한다는 명분만 지키면서 오히려 백성에게는 해로운 실상을 가져오게 된다면 깊이 생각하여 잘 처리해야 한다.”
주변 강대국들이 스스로 옷을 찢고 근육질 몸매를 드러내는 어려운 시기를 우리가 다시 맞았다. 북한은 핵을 보유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무장하기 직전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군사옵션을 거론하고 있다.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려는 카드로야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실제로 있어선 결코 안 될 일이다. 지난주 미국을 방문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미국의 대북 군사옵션에 대해 “이제 실질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데 얼마 남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전쟁 개시 첫날에 6만명의 인명 손상을 예상하고 있더라”라고 말했다. 어디 그게 남 얘기하듯 전할 수 있는 말인가? 나는 선조 임금의 삐죽이는 입을 떠올렸다.
제대로 된 정치 지도자라면 꼭 기억해야 한다. 국민이 곧 국가요, 국민의 생명은 대국에 대한 의리(동맹)에 우선한다는 것을.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