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31일,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가 수백명의 암호 전문가에게 ‘신뢰할 만한 제3자 중개인이 필요 없는, 완전히 당사자 간 1 대 1로 운영되는 새로운 전자통화 시스템’에 대한 9쪽짜리 보고서를 내려받을 수 있는 링크를 이메일로 보냈다.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비트코인’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름만 보면 그는 일본계 사람 같다. 일본에서 사토시는 총명하다(聰), 지혜롭다(智·慧·哲), 뛰어나다(俊), 민첩하다(敏)는 뜻을 담은 한자로, 남자 이름에 많이 쓴다. 일부 일본 언론은 ‘中本哲史’라고 표기하는데, 나카모토는 일본어를 쓴 적이 없다. 그의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는 독일 무료 이메일 계정을 쓰고, 영국 영어 특유의 표현을 쓴 일이 있다. 그가 글을 올린 시간을 추적해 “평균적인 수면을 하는 사람이라면 북미 동부나 남미, 서인도제도에 살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기도 했는데, 정체를 파악하기엔 너무 사소한 단서다. 개인이 아니라 팀 이름이었을 거란 추정도 있다.
나카모토는 ‘제네시스 블록’이라고 불리는 비트코인의 첫번째 블록(50비트코인)을 채굴했다. 비트코인 전문가 세르지오 러너는 나카모토가 98만개의 비트코인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지금 거래 시세로 20조원어치다.
나카모토는 2011년 4월 갑자기 사라졌다. 위키리크스가 2010년 11월 말부터 미국 정부의 비밀문서를 폭로했는데, 비트코인으로 위키리크스에 후원금을 보낼 수 있다고 해서 비트코인이 주목을 받던 무렵이었다. 나카모토는 미국 정부가 감시하게 될 것을 우려해 비트코인을 후원에 쓰는 것에 반대했다. 그는 비트코인 프로젝트 리더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는 처음부터 비트코인 최대의 적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의 이름 ‘사토시’만 1억분의 1 비트코인을 부르는 단위로 남아 있다.
정남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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