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사법농단 규탄 법률가 기자회견’이 5일 오전 대법원 동문 앞에서 열려, 법학교수와 법학자, 변호사 등 법률가들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지키지 못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규탄한 뒤 천막농성장을 세워 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파일 98건을 5일 공개했다. 특별조사단 조사 대상이었던 410건을 모두 공개하라는 요구가 커지자 나온 조처인데, 자체적으로 선별한 문건임에도 충격적인 내용이 상당히 포함돼 있다. 게다가 ‘조선일보 보도요청사항’ ‘민변 대응전략’ ‘대한변협 압박방안 검토’ 등 민감한 제목의 문건은 이번에도 공개하지 않았다. 전체 문서 공개와 강제수사 외엔 이제 방법이 없다.
이날 공개된 문건을 보면,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의 인사권이 강화될 수 있는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행정처가 한마디로 ‘발가벗고 뛰었다’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특히 2015년 8월6일 양 대법원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독대 뒤 작성한 문건에서, 영장 없는 체포 활성화 및 체포 전치주의 도입, 영장항고제 도입 등을 ‘빅딜카드’로 제시하며 법원 본연의 기능까지 포기하려 한 것은 기가 막힌다. 행정처는 상고법원의 대안으로 거론되던 법관 증원론에 대해선 “민변 등 진보세력의 입성 시도 위험”을 부각하며 보수 정권을 압박하기도 했다. 법무부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조선일보> 1면 기사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도 눈에 띈다. 이밖에 행정처가 세월호 사건에 ‘관심과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는 대외적 홍보 효과를 위해 재판부 임의배당을 검토하거나, 사법행정 민주화를 요구하는 법관을 ‘선동적’으로 몰아 일선 판사회의를 무력화하려 하는 등 부적절한 내용이 수두룩하다.
문건 추가 공개로 법원의 자체 조사엔 한계가 있음이 한층 확실해졌다. 법원이 자체 판단할 게 아니라, 문건 전체를 공개해 국민이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의혹을 완전히 해소하기 위해선 문건들이 실제 실행됐는지, 어디까지 보고됐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이런데도 일각에서 ‘사법부가 흔들린다’며 강제수사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5일 열린 사법발전위원회에선 강제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각 지법의 단독·배석판사들도 잇달아 “성역 없는 수사 촉구”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회의와 서울고법 판사회의 등 중견급 법관 회의체는 정족수 미달로 의결을 못 하거나 대책 마련 촉구에 그치는 모습이다. 혹여 자체 징계로 사태를 마무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지금보다 더 거센 국민들의 비판에 직면해 법원의 신뢰 회복은 요원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