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에서 온 난민 신청자 알하라지(27)가 16일 제주도 숙소에서 취재진에게 휴대폰으로 마을이 폭격당했던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제주/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제주도에 머무는 예멘인들을 둘러싸고 청와대 게시판에서 논란이 불붙었다. 70여건에 달하는 국민청원 가운데는 난민보호를 주장하는 소수 목소리도 있지만, ‘불법 난민 급증’을 우려하거나 반대하는 글이 압도적이다. 그중 한 청원은 서명자가 20만명을 돌파했다. 특히 이슬람인을 차별하거나 폄훼하는 주장까지 나오는 것은 몹시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올 들어 제주도에 무비자로 들어온 예멘인들의 난민 신청이 급증한 것은 사실이다. 지난달 말 기준 519명으로 지난해 전체 42명의 10배가 넘는다. 대부분은 무비자로 90일 체류가 가능한 말레이시아로 탈출했다가 연장이 되지 않아 제주까지 온 경우다. 2015년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이라 불리는 내전 발발 이후 예멘 인구의 70%인 2000만명이 끼니를 해결할 수 없는 상태에서, 고향 밖으로 내몰리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한국은 1991년 유엔 난민지위 협약에 가입한 뒤 2013년 7월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까지 도입한 나라다. 어떤 이들은 무비자 제도와 선진적인 난민법을 악용하는 ‘가짜’ 난민을 우려하지만, 극히 일부의 현상을 갖고 신청자 전체를 매도해선 안 된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실제 난민 수용률은 난민보호국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낮다. 94년 이후 올 4월말까지 신청자 3만8천여명 가운데 난민 인정을 받은 이는 800여명에 불과해 전세계 100위권 밖이다. 오히려 난민 신청자들은 지원체계 부재나 심사인력·통역자원 부족으로 비인간적 환경에서 수년간 강제구금 생활을 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법무부는 이달초부터 예멘인의 무비자 입국을 불허하고 이미 입국한 이들은 제주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했는데, 이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난민법은 인권 선진국임을 ‘홍보’하려고 만든 게 아니다. 제주도 한 지역의 부담으로 떠넘길 문제도 아니다. 심사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너무 많은 서류를 요구하는 등 지나치게 까다로운 심사기준을 국제기준에 걸맞게 조정해야 한다.
더불어 사회의 인식 변화가 절실하다. 제주도에선 예멘인을 돕는 손길이 이어지는데도, 테러에 시달리거나 난민 유입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는 건 인종 혐오이자 난민의 인권과 존엄을 부정하는 일이다. 오는 20일은 ‘세계 난민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