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검찰로부터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관련 자료 제출을 요청받은 대법원이 6일째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전직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등이 사용했던 컴퓨터 하드디스크는 물론 법인카드 사용내역, 내부 메신저와 이메일 등 상당히 광범위하고 민감한 내용까지 포함돼 있어 법원이 신중하게 판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법원 조사단의 파일 열람 자체를 법 위반이라고 시비하는 고발까지 돼 있는 상태여서, 법원의 고민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대법원 한쪽에서 범죄 혐의와 직접 관련이 없는 자료라는 등의 이유로 하드디스크 제출에 반대하고 있다는 일부 보도는 매우 걱정스럽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힌 대로 대법원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등의 하드디스크를 요청한 것은 대법원 판례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증거 능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조처라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법인카드와 관용차 운영일지 등도 청와대와의 접촉 여부 등 동선 확인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특조단)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4명의 하드디스크에 있는 34만여개 파일 중 키워드 검색 방식으로 410개의 파일만 확인했을 뿐이다. 행정처 핵심 간부들의 컴퓨터는 고장 났거나 파일이 삭제됐다는 이유로 복구하지 못했고, 양 전 대법원장이나 두 전직 처장의 컴퓨터는 손도 대지 못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검찰의 요구를 과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법원은 ‘개인정보보호법 등 관련 법령에 위배되지 않도록 임의제출 범위를 검토 중’이라며 ‘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검찰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특조단이 애초 판사 사찰 등을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결론 내지 않은 데서 보듯이 법원과 검찰이 불법성 여부를 다르게 볼 수 있다. 임의제출 단계에서 추가 제출을 요구하며 핑퐁게임을 하게 되면 결국 형사법 원칙대로 압수수색 영장으로 해결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법원은 이미 국민적 신뢰를 잃은 ‘양승태 일파’를 보호하려다 ‘사법부’ 전체를 불신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검찰도 법원도 조직 논리에서 벗어나 법 앞에서 겸허해져야 한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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