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사법농단’ 수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법원이 핵심적인 자료의 제출을 거부하더니 이번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판사가 무더기로 기각했다. 서울중앙지법 이언학 부장판사는 지난 2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집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면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의 집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물론 전현직 판사 30여명의 통신내역 영장도 대부분 기각했다. “혐의가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거나 “공모관계 입증이 덜 됐다”는 등의 이유였으나 사안의 중대성 등에 비춰보면 여러모로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다.
사법농단 사건은 상고법원을 밀어붙인 양 전 대법원장의 과욕에서 비롯했다. 이를 실무적으로 지휘한 게 박 전 처장이고 현장에서 직접 총대를 메고 나선 게 임 전 차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전 처장은 상고법원에 반대하던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 소속 판사들의 동향 파악을 지시하는 등 법관 사찰 의혹을 받고 있다. 사찰 대상 법관들은 검찰 조사에서 “불이익을 받은 것 같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이 공개하지 않았던 문건 내용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재판 거래’ 의혹도 점점 짙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장을 기각한 것을 보면, 법원 내부가 암묵적으로 특조단의 결론에 맞춰 사실상 임 전 차장 선에서 꼬리자르기를 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되면 사법농단의 몸통 수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던 ‘김명수 대법원’이 이제껏 보여온 태도는 실망스럽다. 대법원장 한 사람의 과욕으로 정부에 ‘협조’한 판례가 양산되고 숱한 사람들의 생명과 인권·재산권이 유린당했는데도 후임자조차 덮기에 급급한 인상이다. 이런 식이면 국회 입법으로 현 사법부를 불신임하고 특별재판부라도 꾸리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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