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기 법무부 장관(왼쪽)과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공정거래법 전속고발제 폐지 합의안’에 서명하고 있다. 공정위 전속고발제가 폐지되면, 검찰 단독으로도 공정거래 관련 사건 수사를 할 수 있게 된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중대한 짬짜미(담합) 사건을 검찰이 수사하려면, 공정거래위원회 고발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경제 검찰’로 일컬어지는 공정위의 독점적 감시에 힘을 실어주는 ‘전속고발권’ 때문이다. 정부는 1980년 공정거래법 제정 이후 38년 동안 유지해온 이 장치를 없애기로 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1일 ‘공정거래법 전속고발제 폐지 합의안’에 서명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의 협의 절차도 거쳤다. 국회에서 개정안을 입법하는 단계를 남겨두고 있지만, 폐지는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전속고발권 폐지는 시대 흐름을 반영한 당연한 조처다. 기업 간 담합,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 같은 불공정 행위가 끊이지 않았지만, 공정위의 제재·처벌은 약하기만 했다. 공정위의 고발권 독점이 ‘대기업 봐주기’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속고발권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건 것도 이런 배경일 것이다.
이번 결정에 따라 전속고발권이 없어지는 4개 분야는 가격담합, 공급제한, 시장분할, 입찰담합 등이다. 그 외 시장지위 남용 같은 사건에선 지금처럼 유지가 되니, ‘부분 폐지’인 셈이다. 이와 별도로 공정위는 유통3법(대규모유통·가맹사업·대리점법)과 표시광고법의 전속고발권, 하도급법의 기술탈취 관련 전속고발권도 없애기로 했다. 이를 두고 기업 경영활동을 억누를 것이라는 걱정의 목소리가 나오는데, 불공정 행위는 결국 기업 특히 중소기업에 타격을 준다는 점에서 올바른 결정이다. 고발이 남발될 가능성에 대한 대책은 나중에 다시 검토하면 될 일이다.
전속고발권 폐지는 검찰의 힘을 키우는 동시에 숙제를 안긴다. 검찰은 공정위 고발이라는 사전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불공정 행위에 대한 수사, 기소를 할 수 있게 된 것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공정위와 법무부가 ‘담합 사건 자진신고’(리니언시) 정보를 공유하기로 한 것도 검찰의 권한과 책임을 키우는 대목이다.
특히 대기업 관련 사건에서의 과거 행적을 되돌아본다면 검찰의 짐은 더 무겁다. 공정위 고발이 검찰 기소나 재판으로 이어지는 게 많지 않았고 약식기소를 통한 벌금형으로 마무리되기 일쑤였다는 점에서 그렇다. 방망이에 솜을 두르고 때리는 시늉만 했다는 비판을 공정위만 받을 게 아니란 걸 명심해야 한다. 검찰과 공정위가 앞으로 선의의 경쟁을 벌여 우리 사회 ‘갑’의 횡포를 줄이는 결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