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20일 법원 전산망을 통해 법원행정처 폐지와 사법행정회의 구성 의사를 밝혔다. 고등법원 부장판사제를 폐지하고 법원장 임명 때 소속 법관들 의견을 반영하는 등 여러 사법개혁 방안 시행 방침도 재확인했다. 대부분 사법발전위가 건의한 내용들이지만 김 대법원장이 자기 목소리로 개혁 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김 대법원장은 “내가 만난 법관이 독립적이고 양심적으로 심판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깨질 때 국민이 느끼는 배신감의 크기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라며 “법관은 국민의 신뢰를 배신하는 것이 국민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주는 일인지를 절실하게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취임 1년을 맞아 작심하고 양승태 대법원 시절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행태를 강도 높게 질타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면서 우선적으로 법원의 관료적인 문화와 폐쇄적인 행정구조를 개선하는 데 개혁을 집중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특히 ‘사법발전위 건의 실현을 위한 후속추진단’ 구성 의사를 밝히면서 기존의 법원행정처를 배제하는 대신 법원노조로부터도 추천을 받겠다고 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김 대법원장이 이날 밝힌 내용들에 대해 소장법관들한테서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앞으로 추진단 구성에서부터 법원 내 조직이기주의를 넘어 국민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법개혁’의 명분에 맞는 ‘개혁’ 진용으로 꾸리길 바란다.
다만 김 대법원장이 이날 국민의 신뢰를 강조했으나, ‘사법농단 수사’를 대하는 법원의 대체적 분위기는 여전히 국민 생각과 거리가 멀다. 압수수색 영장이 줄줄이 기각되는데도 ‘법과 양심’의 성역에 갇혀 집단적으로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일인지 답답할 따름이다. 김 대법원장은 국민과의 ‘수사 협조’ 약속을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