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차량 압수수색 과정에서 집에 보관하던 이동식저장장치(USB) 2개를 확보했다고 한다.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지난 30일 양 전 대법원장의 차량과 차한성 박병대 고영한 등 전 법원행정처장들의 사무실 또는 집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 데 따른 것이다. 집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기각했으나 처음으로 양 전 대법원장을 피의자로 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 것은 그가 사법농단 ‘몸통’임을 사실상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잖다. 법원이 사법농단의 방패막이 구실로 국민적 불신을 자초해온 늪에서 빠져나와 이제라도 법과 양심에 따른 판단으로 국민과 눈높이를 맞춰나가기를 기대한다.
양 전 대법원장이 받고 있는 혐의는 한둘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의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판결을 미루는 과정에서는 직접 적극적인 역할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2013년 12월부터 여러 차례 차한성 당시 법원행정처장 등을 불러 소송 연기나 판례 변경을 논의했고, 양 전 대법원장은 이 시기를 전후해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 직접 전화해 해외파견 법관 자리를 요청한 것으로 보도됐다. 외교부 문건뿐 아니라 당시 행정처 관계자들의 진술 등을 통해 이런 ‘재판거래’의 증거들을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뿐 아니라 전교조 법외노조 소송이나 통진당 관련 행정소송 등 행정처가 관여한 의혹을 사는 여러 사건도 양 전 대법원장의 뜻과 무관하게 추진됐다고 보기 어렵다.
이규진 전 양형위 상임위원의 업무수첩과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의 이동식저장장치 등에는 사법농단 몸통이 양 전 대법원장이란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가 적잖다고 한다. 검찰이 수사 중인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들이 대부분 상고법원을 관철하려다 무리수를 둔 결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 정점에 양 전 대법원장이 있다는 게 좀더 분명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이 명쾌하게 드러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김명수 대법원’의 수사 협조는 미흡하고, 핵심 증거는 여전히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썩은 살을 도려내는 결단이 없으면 사법부가 국민 신뢰를 되찾는 길도 요원해진다. 사법부 구성원들의 깊은 성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양 전 대법원장 역시 그토록 법원을 사랑한다면, 어떤 것이 진정 사법부를 위한 길인지 이제라도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일부에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발부를 놓고 ‘삼권분립’을 흔드는 일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사법부가 헌법과 법률을 초월한 존재라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 양 전 대법원장이나 법관들이 멀리해야 할 악마의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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