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법관대표회의가 사실상 법관 탄핵을 촉구한 뒤 여당이 20일 이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반면 일부 보수 언론과 야당은 ‘삼권분립 위반’이라는 논리까지 동원해 법관회의를 비판하고 나섰다. 사법농단 사태로 인한 사법불신의 심각성을 외면한 왜곡된 주장이다.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개입, 법관 사찰이 잇따라 드러나는 동안 이를 지적·비판하기는커녕 사실상 옹호하거나 방관하며 법원 고위층의 기득권을 대변해온 이들의 주장이란 점에서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자유한국당이나 <조선일보> 등 보수 야당·언론은 검찰이 수사 중이어서 탄핵할 만한 혐의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논리를 들고 있다. 그러나 탄핵은 형사처벌과 달리 헌법 위반 여부가 판단 기준이다. 이미 3차례에 걸친 법원 자체조사를 통해 공개된 문건들과 조사보고서, 검찰 공소장이나 수사 과정에서 공개된 문건 내용만으로도 헌법 위반 행위는 숱하게 확인된다. 탄핵할 만한 사안인지는 탄핵 소추와 심판 절차를 통해 가리면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역시 검찰의 기소가 이뤄지기 전에 진행됐다. 이들은 국회의 권한인 탄핵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삼권분립 위반이란 주장도 펴고 있다. 탄핵 소추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당연히 국회의 몫이다. 법관회의가 한없는 추락을 경험하고 있는 법원의 구성원으로서 신뢰 회복을 위한 자정 차원에서 법원 안팎에 솔직한 견해를 밝힌 것으로 보아야 한다.
법관회의는 탄핵 대상으로 두 유형의 재판 개입을 특정했으나 ‘법관 사찰’ 역시 재판의 독립을 침해한 것으로서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을 청와대와 협의한 의혹을 받는 권순일 대법관을 비롯해 현직 법관 6명에 대해선 이미 정의당이 국회에서 탄핵 주장을 폈고, 사법농단 대응 시국회의는 탄핵소추안까지 공개했다. 6명 이외에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이나 압수수색 영장 심리에 개입한 판사 등 헌법 위반에 해당하는 이는 여럿이다.
‘양승태 대법원’의 상고법원 로비로 논조까지 바꿨다는 의혹을 받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세력이 사법농단 사건 발생 이래 지금까지 줄곧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꿔 본말을 뒤집는 교묘한 프레임을 동원하는 것은 우려할 만하다. 사법농단을 자행한 법원 수뇌부를 ‘법원의 기둥’ 운운하며 찬양·옹호하고, 이에 저항하다 사찰과 인사 불이익 등 피해를 당한 판사 그룹을 당파적·정치적 단체로 매도하는 건 악의적인 왜곡 보도다.
박병대 전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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