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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두 대법관 영장 기각…결국 ‘임종헌 꼬리자르기’로 국민 외면 자초하는가

등록 2018-12-07 09:01수정 2018-12-07 20:50

박병대(왼쪽) 고영한 전 대법관
박병대(왼쪽) 고영한 전 대법관

법원이 직권남용 등 혐의로 청구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박 전 대법관의 영장을 심리한 임민성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7일 새벽 “범죄 혐의 중 상당 부분에 관해 피의자의 공모관계의 성립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 다수의 증거자료가 수집되어 있고, 현재까지 수사경과 등에 비춰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고 전 대법관에 대해서도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행에서 피의자의 관여 정도 및 행태, 일부 범죄사실에 있어서 공모 여부에 대한 소명 정도, 주거지 압수수색 등 광범위한 증거수집이 이루어진 점” 등을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들과 공범관계로 공소장에 적시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구속기소한 것과 비교하면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검찰 사상 유례없이 장기간 최대 인원의 검사들을 투입해 수사했는데 정말로 공모관계 입증이 부족해서 기각한 것인지,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피의자에게 증거자료가 남아있으니 인멸 우려없다는 게 타당한 판단인지 의문이 뒤따른다. 상하관계인 이들이 공범관계가 아니라면 임 전 차장의 단독범행이란 뜻인데 국민들의 법 상식과는 동떨어진 판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이번 영장 기각으로 사법농단 사건의 몸통격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조직 보호를 위해 실체적 진실을 외면했다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어 보인다.

박 전 대법관은 2014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장을 지내면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의 전범기업 상대 민사소송을 비롯해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관련 행정소송,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대선 여론조작 사건 형사재판, 통합진보당 관련 행정소송 등 여러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아왔다. 고 전 대법관 역시 부산고법 판사 비리사건 관련 재판에 개입하고 인천지법 판사 뇌물수사 확대를 막기 위한 재판에도 관여한 혐의 등으로 영장이 청구됐다. 두 사람 모두 2014∼17년 법원행정처에서 작성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라는 문건을 결재하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보고하도록 하는 등 사법농단의 책임자로 꼽혀왔다. 박 전 대법관은 2015년 4월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이완구 국무총리 낙마로 공석이 된 총리직을 제안받은 사실이 새로 드러나 검찰은 영장심사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와의 유착’ 증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임 전 차장의 영장을 발부한 법원이 두 대법관 출신의 영장을 기각했으니 대법원 특별조사단 때부터 제기돼온 ‘임종헌 선에서 꼬리자르기’란 지적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검찰 주장처럼 큰 권한을 행사한 상급자에게 더 큰 형사책임을 묻는 것이 법이고 상식이란 점에 비춰봐도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다.

앞으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와 기소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강제징용 재판의 피고쪽 대리인인 김앤장 소속 변호사를 여러 차례 만나는 등 재판에 직접 개입했을 뿐 아니라 이른바 ‘물의 야기 법관’에게 불이익을 가하도록 직접 지시하는 등 블랙리스트 실행에 관여한 혐의도 받고 있다. 임 전 차장 공소장에 여러군데 공범으로 등장하는 등 사실상 사법농단의 몸통으로 여겨져왔다. 두 대법관을 거쳐 대법원장에게 올라가는 연결고리가 끊어지면 사법농단의 실체적 진실도 실종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영장 기각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중앙지법이 영장전담판사를 늘리고 연고없는 판사들로 형사재판부도 3개나 증설하는 등 공정한 재판을 위한 준비를 해왔으나 모두가 ‘눈 가림쇼’에 볼과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앞으로 ’짝퉁 특별재판부’ 말고 제대로 된 특별재판부를 설치할 것과, 법관 탄핵을 추진하라는 요구도 다시 터져나올 수 있다. 이런 법원 분위기에서 과연 사법행정제도를 개혁한들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회의도 확산할 것이다.

사법부는 입법·행정부와 함께 헌법이 정한 3부 가운데 유일하게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국민 신뢰를 잃으면 존립의 기반을 잃는다. 이번 영장기각은 국민이 맡겨준 사법권을 조직보호를 위해 악용했다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어 보인다. 국민들의 법 감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결정이 아닐 수 없다.

법관 사회는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가 최악의 수준으로 추락하고 있음을 제대로 인식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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